맛있는(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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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콰이사 내츄럴 커피, 그리고 화이트 트러플 소금의 기버터와 피치 스리라차
포도주를 전혀 모르면서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 계기는, 갤러리에서 막내로 일했을 때 경험한 한 모금 때문이다. 한 작가님이 전시 오프닝 리셉션에 쓸 와인을 직접 가져오셨는데, 나는 파티가 끝날 때까지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하고 있다가,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테이블을 정리할 때에야 비로소 병을 치우기 위하여 남은 몇 방울을 입에 댈 수 있었다. 향기가 코끝을 스쳤을 때, "응? 다른 와인들과 다르네!" 라는 깨달음과 함께 눈이 밝아졌고, 혀에 머물던 단 맛과 목구멍을 넘어갈 때의 짜릿함은 심장까지 여운을 남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아마도 나의 욱신거리던 발과 피곤한 눈 그리고 파티가 끝났다는 달콤쌉싸름한 안도감의 합작으로 이루어낸 풍미였던 것 같다. 굳이 이름을 외운다거나 몇 년 산인지..
2018.02.05 -
동네에 좋은 빵집이 생겼다 - 작은 빵집 응원하기
위로가 필요한 아침, 작은 사치 애플파이 "매일 아침 밀어서 직접 만듭니다" 라는 문구 아래의 가격이 바로 옆 가게인 파리크라상이나 뚜레쥬르와 별반 다름 없다는 사실에 불끈하여, 나는 오늘 아침 식사로 작은 사치를 부리기로 했다. 대자본의 호위를 받아 공장에서 대량 구매한 재료를 똑같은 매뉴얼로 구워 팔면서, 인테리어와 패키지 디자인을 고급스럽게 하여 마치 유럽의 어느 나라 작은 골목길을 지키는 빠띠시에가 만든 듯 행복한 착각을 파는 그런 빵집에 비하여, (물론 그 파랗고 초록빛의 행복한 아우라도 나는 좋지만...) 내가 알뜰히 아끼는 우리 동네 빵집 블랑슈는 전문 제빵사들이 손수 재료를 고르고 반죽한 빵들을 새벽마다 구워 파는데, 아아... 가격이 대량공장생산된 빵과 비슷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
2017.11.02 -
카페 | 보름산 미술관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옆으로는 버려진 땅과 밭 그리고 야트막한 동산이 있다. 그 쪽을 가리키고 있는 "보름산 미술관"이라는 이정표를 볼 때마다 나는 궁금하면서도 막상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었다. 마치 들뢰즈의 '매끄러운 공간'처럼, 위험하고 황폐해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너머에 '보름산 미술관'이라는 표지가 있었고, 미술전공자로서 나는 '미술관'이라는 흔치않은 표지에 호기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엄마를 설득해서 함께 그 곳으로 넘어가 보았다. 아파트 단지와는 반대 편, 그 길 같지 않은 곳으로 핸들을 꺾었다. 그렇게 황량하게 버려진 땅과 붉은 락카로 낙서된 폐가 두어 채를 지나다 보니, 수줍은 글씨체의 표지판 '보름산 미술관'이 가리키는 작은 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2017.11.02 -
카페 | 커피발전소
명실공히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카페. 심지어, 지도앱에도 나와있지 않은, 간판도 높이 걸지 않고, 당인리 발전소 정문 앞에 있어서 이름도 무심하게 "발전소"라고 붙인, 100주년기념교회 또래 친구들의 아지트, 독일 바로크 클래식 채널을 틀어주고, 가끔 운 좋으면, 유쾌한 페이소스의 최민석 작가님께서 작업에 몰두하고 계신 모습도 볼 수 있는, 주변에 아무리 트렌디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넘쳐나도 아껴두어 매일 매일 가고싶은 카페... 직장 다니면서 일에 지쳤을 무렵 나의 소박한 소원 중 하나는 이곳에 와서 아무 걱정 없이 종일토록 나무 퍼즐을 맞춰두고 아무 책이나 제목 끌리는대로 읽는 것이었다. 쉬크하고 말없으신 사장님은 과거 모 인터넷서점 임원이셨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2016.12.08 -
카페 | Can-Do-Spirit - 로블랜드 트라니아
로블랜드 트라니아라는 이름의 카페가 우리 동네에 아주 작은 둥지를 틀고, 하루 300잔만 준비하여 다 팔리면 문을 닫겠다는 소박한 야심의 안내문을 내 건지 한 달도 안 되어, 우리 동네의 행복지수는 또 한 단계 올라갔다.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린데도 불구, 용돈이 생기면 꼭 이 카페에 가서 한 잔 테이크아웃하고 싶어진다. 까닭은 이 카페의 젊은 사장님과 직원들이 주는 밝은 기운 때문이다. 동네에 많은 카페가 있지만, 이 카페만은 언제나 젊은 엄마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아침 일찍 들러 커피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노라면, 커피향과 직원들의 미소, 재즈 음악, 출근하는 사람들의 러쉬가 가라앉아있기 일수인 나의 기분도 함께 일으켜준다. 왜 이 카페만 잘 되는 것일까. 우리 동네는 항공사 직원들이 많고 젊은 아기..
2016.11.30 -
카페 | 커피향기에 실린 소독약냄새 - 업타운카페 세브란스점
남편이 새벽에 출근하는 날이면 지하철역까지 차로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새벽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오늘은 신촌 세브란스에 아침 8시 30분 예약이 되어 있어서, 새벽 길로 곧장 신촌에 왔다. 오랜만에 출근 행렬에 끼어있으니 흥분되어, 마치 출근하는 사람들처럼 즐겁고 박진감있게 운전하는 바람에 그만 너무 일찍 병원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6시 55분. 출근시간에 김포공항에서 신촌세브란스까지 20분만에 주파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무얼 해야 하나 당황했지만, 역시 우리 나라 최고의 병원답게 아침 일곱시에도 본관은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나는 비교적 한가하고 아늑한 카페를 찾아갔는데, (병원 음식점과 카페가 아무리 아늑한들 소독약 냄새를 품기 마련이지만) 아주 맛없고 차가운 BLT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
2016.11.08 -
동네에 좋은 빵집이 생겼다 - 블랑슈
동네에 작은 빵집이 문을 열었다. 한 달을 두어도 상하지 않는, 참으로 기이한 대자본의 제과점들 사이에서 오롯이 "블랑슈" 라는 자기 이름를 걸고, 하얗고 순수하다는 뜻이란 설명까지 덧붙인 그 간판 아래. 반갑게 가게에 들어섰을 때 마침 내가 하고픈 말을 하고있는 아기아빠를 보았다, "(점원에게 활짝 웃으며) 우리 동네에 좋은 빵집이 생기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왠지 천진해보였던 그 젊은 아빠 곁에서 서너살 되어보이는 어린 아들은 먹어보라고 잘라둔 빵조각들로 배를 채우느라 정신 없었다. 어른인 나 역시 얌전하지만 신속하게 그 샘플들로 허기를 달래었는데, 모든 빵들이 건강하고 맛있었다. 파운드 케이크는 계란을 많이 써서 묵직했고, 초콜렛 빵도 좋은 카카오의 향기가 났다. 재료를 아끼지 않아 풍성한 ..
2016.10.26 -
청귤차
바쁜 직장생활, 그것도 대기업 사장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언제 청귤로 손수 청을 담갔을까. 부지런한 친구의 사랑이 향기롭다. 달콤새콤하게 우러난 차를 마신 뒤에는 씹어먹을 수 있도록 얇게 저민 과육도 정성스럽다.
2016.10.26 -
카페 | 아침 커피 - Ediya Coffee
아침 여덟시 삼십분. 차가워진 아침 공기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저렴한 카페라떼 한 잔. 이른 아침에 홀로 카페를 지키는 젊은 여성은, 주문이나 계산과 상관 없는 나의 눈길에 자신도 모르게 경계의 표정을 지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실은 내가 마음 속으로 그녀를 예쁘고 어리고 사랑스럽다고 여기며 바라보았다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문득 싼 커피를 표방하는 이 카페의 인테리어 하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의자마다 새겨진 동으로 만든 명패며, 벽돌과 시멘트로 파벽한 벽이며, 나무 테이블이 정갈한데, 아름다움과 현실성 가운데 묘한, 성공적인 줄타기. 게다가, 컵홀더에 15년을 버텼다는 자랑스런 기념 문구 – 바로 건너 편에는 두 배 가격의 다른 유명 상표의 카페가 보인다. 이 가게와 이 사업에 아무 상관 없..
2016.09.30 -
Macrovie | 아보카도 참깨 월남쌈
더운 여름, 불 쓰지 않는 요리를 하고 싶을 때, 혹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기름에 대한 욕구가 일 때, 몸에 좋은 아마씨유를 참깨와 함께 섭취할 수 있고, 지방에 대한 욕구도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마크로비오틱 방식의 월남쌈! 수업시간에 먹어보고는 맘에 꼭 들어서, 저 아마씨유를 사기 위해 강남 신세계까지 찾아갔었다. 이 귀하고 비싼 기름은 산화가 빠르니 마개를 열면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어떤 분은 아침마다 아마씨유로 오일풀링하여 효과를 보셨다고도 들었다. 나는 아마씨유에서 풍기는 지푸라기 풀냄새를 좋아하며, 아쉽게도 이제는 몇 숟가락 남지 않았다. 재료 아보카도 아마씨유 양상추 양배추 월남쌈피 흰깨 검은깨 소스(간장 와사비 두반장 두유마요네즈) 야채는 냉장고에서 하얀색과 푸른색의 조화를 맞춰 준비했다..
2016.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