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욕을 사랑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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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NY |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 - 구역모임
Photo by Ben Duchac, https://unsplash.com/collections/30630/nyc?photo=96DW4Pow3qI 어떠한 장소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구역 모임은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업 전문 변호사, 뉴욕필하모닉의 트롬보니스트와 하피스트, 전직 의사이자 작곡가, 동유럽에서 온 건축가, 회계사, 디자이너 등등. 한국에서는 20대 청년들이 모이는 공동체만 경험했던 나에게 청년부터 노년 그것도 다양한 인종과 직업에 걸쳐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 모임은 특별했다. 처음 구역 모임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을 때, 얼마나 망설였던지. 언어적으로도, 문화적로도 (극동아..
2017.02.23 -
NY NY | 거리에서 재즈가 들리면
https://unsplash.com/photos/T-G9PVLOfOY한 여름 밤,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던 길, 우연히 우리 교회 음악 감독이셨던 Jonathan Gilley씨와 키가 한 줌도 안 되는 그의 어린 아들이 한 카페 앞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카페에서는 라이브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콘트라베이스가 마지막 음을 울릴 때까지, 꼬마는 숨 죽여 연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음의 진동이 사라지자, 아이는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도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주더니 다시 길을 걸어갔다. 어린이집에서 곰세마리를 들어야 할 것 같은 어린 꼬마가, 길거리에서 재즈에 반하여 발걸음을 멈추는 장..
2017.02.22 -
NY NY | 리디머 장로 교회 Redeemer Presbyterian Church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결심했을 때, 나는 학교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고 기도했었다. 제발 좋은 교회가 있는 곳으로 나를 보내달라고 기도 드렸는데, 그것은 매우 어린 소녀 감성의 기도였고 마음 속으로는 작고 아담한 울타리의 교회와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를 닮은 목사님을 그렸던 것 같다. 어쨌든, 맥도널드에서 부끄러워 크게 주문도 못 하던, 소심한 여학생이었던 나에게 타지에서의 교회는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기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충고해 주었다. 공항에 어떤 교회에서 마중 나왔는지에 따라서 이민 생활이 결정 된다고. 어떤 사람들은 영어 실력을 빨리 늘게 하기 위해서 절대 한인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도 충고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 택했던 교회는 이민자 2세들이 세운 교회..
2017.01.18 -
NY, NY | 뉴욕의 첫인상
뉴욕시립대학교에서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뉴욕은 도무지 알 수 없고 두려운 장소였다. 학교에서 보내온 공문에는 시내의 사설 기숙사 명단이 들어있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나의 머리를 누일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모두가 짧고 차갑게, 나를 위하여 남아있는 자리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리스트 마지막 기숙사의 남자는 건조한 동양 악센트에서도 간절함을 느꼈는지, 조금 더 길게 답해주었다, “방이 없어요. (한숨) 더 이상 방이 없어요.” 라는 그의 운율이 마치 도끼의 랩처럼 인상적이어서, 나는 잠시 갈 곳 없는 처지를 잊고 그 기이한 여운에 잠겼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숙소가 없는 뉴욕이라는 도시는 역설적으로 참 고독한 곳 같았다. 처음으로 케네디 공항에 내리던 날, ..
2016.12.29 -
NY, NY | 글로리아 (Gifted Hands, HFNY)
https://unsplash.com/search/new-york-broadway?photo=pAqfQye5hlw홈리스 쉘터에 머물던 글로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당시에 나는 브로드웨이에 있던 기프티드핸즈 Gifted Hands 라는 미술치료art therapeutic 프로그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동방예의지국 유교 문화의 소산이었던 나는 그렇게 나이 많은 할머니가 센터로 들어서는 것을 볼 때마다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여 그녀를 부축하곤 했고, 그래서 글로리아는 자연스럽게 내가 돌보게 되었다. 지금 나는 부끄러움과 후회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알량한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매 주 기프티드핸즈에 갔지만, 내게 사랑의 마음이나 봉사의 정신은 없었다. 오히려 ..
2016.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