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나의사랑하는책(7)
-
번역 | Gracias A La Vida 살아있음에 감사를
살아있음에 감사를 -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신은 나에게 두 개의 별을 주셔서, 눈을 뜰 때마다 검은색과 흰색을 완벽히 구별하게 하셨습니다. 저 높은 하늘 뒤에 가득한 별 빛들을 구분하게 하셨고, 수많은 군중 가운데에서도 내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살아있음에 감사를 -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신은 나에게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습니다. 그 모든 숨 소리와 낮과 밤이 지나가는 소리들, 크리켓 소리, 카나리아, 망치, 터빈 돌아가는 소리, 벽돌이 깨지는 소리, 폭풍우, 그리고 부드러운,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살아있음에 감사를 -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신은 나에게 소리와 언어를 주셨으므로, 나는 사고하며 선언합니다. 어머니, 형제, 친구 그리고..
2017.03.03 -
나의 사랑하는 책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울었던 적은 두 번. 그 중 한 번은 박완서 작가님이 돌아가셨던 다음 날, 김영하 작가님이 다른 언급 없이 "그리움을 위하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셨을 때였다. 다른 한 번은 정이현 작가의 "삼풍백화점"을 읽어주셨을 때. 그 사건에 대하여 '신의 심판'이라고 쓴 칼럼을 본 주인공이 신문사에 전화하여 따지는 장면에서 나도 함께 울었었다. 그리고 오늘 세 번 째 나의 눈물을 부른 책은 최은영 작가의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였다. 역시나 아무 생각 없이 팟캐스트를 들으며 이것 저것 잔 일을 하고 있던 나는 결국 눈물로 화장을 포기한 채, 혼자 흐느끼며 옷을 갈아입고 운전대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엘리베이터나 현관 앞에서 만났다면 얼마나 뻘쭘했을까. 만나기로 ..
2016.12.12 -
나의 사랑하는 책 | 숨결이 바람될 때
남편의 중성지방 수치가 1480, LDL은 450, HDL은 20이란 검사결과를 받았을 때, 이 책이 읽고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건강을 되돌릴 수 있을까?" 남편은 해맑은 얼굴로 건강한 듯 회사에 다니고 운동을 하지만, 이 수치는 사실 오늘 당장 그가 심장발작을 일으킨다거나 뇌졸증으로 쓰러진다해도 이상하지 않은 팩트이다. 화창한 가을 햇살 아래, 나는 그가 가져다준 보험증서들을 베개삼아 편안하게 소파에 누워서 이 책을 한 달음에 읽었다. 책의 저자인 폴 칼라니티는 레지던트 마지막 해 자신의 폐암을 발견하고, 투병과 함께 이 책을 집필했으며, 완성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죽음 이후, 그의 책은 딸과 함께 세상에 남은 아내 루시가 마무리하여 출간했다. 책의 제목은 아래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당..
2016.10.27 -
나의 사랑하는 책 | 한강의 "희랍어시간"
그 후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다. 목적도, 맥락도 없이 그저 인상 깊다고 느낀 낱말들이었는데,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 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는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ㅜ-ㅍ 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 다음으로 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숲. 한강 작가의 ‘희랍어시간’을 읽으며, 뉴욕 매니스음대에서 성악 과정을 밟던, 친한 언니가 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언니는 나의 발음을 분석하셨다. “너는 성대를 완전히 닫아서 소..
2016.09.13 -
나의 사랑하는 책 | Lone Stand & Forlorn Hope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치열이 바뀌어 있음을 깨달았다. 두개골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있었다는 것 외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달려가니 입 주변이 피범벅이었다. 치아 때문에 뚫린 입술에서 피가 계속 나고 있었으며, 윗니가 뒤로 밀려 입이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끔찍한 모습이었다는것 외 다른 고통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감사하게도) 신경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넘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남편이 “무슨일이에요?” 라며 방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놀랄까봐 얼굴의 피를 대충 닦았지만, 피는 잘 멈추지 않았고 바닥과 문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그가 놀라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피를 본 남편이 메스꺼워 했으므로, 이제 정말 정신차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소파에 앉아..
2016.08.16 -
나의 사랑하는 책 |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어머니를 향한 초혼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불어 원제로는 "La Chambre Claire" 밝은 방)”은 나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구조주의, 혹은 사진이나 미학에 관한 책이기보다도, 깊은 슬픔에 잠긴 예민하고 고독한 철학자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부르는 초혼이다. 위의 사진은 원문인 불어를 영어로 번역한 Hill and Wang 출판사의 1981년 인쇄본이다. 한국에서는 이 영문 번역본의 제목을 따라 "카메라 루시다"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스투디움과 푼크툼’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지만, 동시에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쉬운 개념이기도 하다. 이 책 안에서 내게 가장 재밌었던 푼크톰의 예는 아래의 사진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승마를 하고 있다는 ‘정보’는,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이 사진을 통해 ..
2016.08.12 -
기계 복제 시대의 디자인
직장을 그만 두고, 이제 어떤 일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나는, 블로그를 통해서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이나 인테리어 혹은 디자인 용품을 파는 사람들의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 의류학과 서양화를 전공했으니, (비록 십 년도 전의 이야기지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전까지 카카오톡 외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물론 싸이월드조차 하지 않았던 내가 소셜미디어라는 망망한 바다에 매일 소심한 눈길을 보내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마침 주변에 프로페셔널 디자이너 친구들이 있어서 약속을 정해 만났다. 그리고 그 날 바로 블로거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지난 10년의 영업팀 업무는 나의 성격도 변화시켰다. 나는 모든 것들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는데 익숙했다. 친구들 앞에서 나는 긍정적인 (가벼운) 핑크빛 (아마츄어..
201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