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그림(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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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부엌을 위하여
연말이 다가오면서 초대가 늘었다. 침체된 경기때문일까, 음식점보다는 집으로 초대하는 이들이 많다. 집으로 초대하는 일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이므로, 나 역시 성의를 표하고 싶어서 직접 그림을 그려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집 앞 슈퍼에서 모과를 하나 천 원에 팔고 있길래, 피사체로 하나만 샀을 뿐인데도 거실에 모과향을 가득 채웠다. 이 기특한 과일은 향기로울 뿐 아니라, 유화로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생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우리 집의 환경에서는 유화를 그릴 수 없으므로, 와트만지 위에 수채화로 그린 후 오일파스텔, 즉 크레파스를 덧칠하고 매트 바니쉬를 발랐다. 오랜만에 수채화가 아니라 덧칠하여 그리는 일이 즐거웠다. 바니쉬가 마르면, 다이소에서 산, 역시 천 원짜리 액자에 끼워 선물할 ..
2016.12.08 -
뉴질랜드 타카푸나 해변
엄마에게 무작정-막무가내로 비행기티켓을 사 주신 큰이모, 그리고 그러한 큰이모와 엄마를 모시고 뉴질랜드에 다녀온 사촌동생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뉴질랜드 타카푸나 해변과 랑기토토 섬을 그렸다. 고마운 분들이 좋아하시던 바닷가를 서울 도심 한 복판의 집에서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라며.
2016.11.30 -
촛불 삼킨 고래 - 제5차 광화문 촛불 집회
제 5차 광화문 촛불 집회에 다녀 온 남편이 보내 준 사진 중에는 파란색 고래 풍선이 있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왜 정부가 그렇게 무력했는지 이제야 비로소 이해되는데, 천진한 미소의 귀엽던 고래 풍선은 등 뒤에 노란 종이배를 싣고 별처럼 반짝이던 촛불의 행렬 위를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성경의 요나 선지자도 바다에 빠졌을 때 큰 물고기가 선지자를 삼켜서 3일만에 뭍으로 인도해 주었다고 한다. 문득, 우리 눈 앞에서 아이들이 그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가던 그 때, 단 한 명이라도 기적처럼 살아남기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그 순간에도,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바다 저 편 하늘 저 너머에서는 이렇게 큰 고래가 304명의 영혼들을 고이 저 하늘 나라로 데려가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요나 선지자를 바다에..
2016.11.30 -
초가을에 남아있는 작은 여름들
이제 나뭇잎들과 작별을 고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청초한 초록색이 참 예쁘다. 붓으로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잎사귀들을 그리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오늘처럼 하늘이 높고 햇살이 눈부신 날에는 더더욱. 그래서 나는 잎들이 붉게 물들어 사라지기 전, 두꺼운 종이에 그 모습을 남겨두고 겨울 내내 기억할 참이다. 받아랏~ 햇살! 정말 광합성하여 자라날 지도.. :-) 심지어 아파트 단지 화단에는 장미꽃도 피어있다. 슈퍼마켓에 다녀오는 길, 마치 어린왕자의 장미꽃 같은 저 붉은 색이 환하게 인사하여 사진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시월인데, 초가을에 남아있는 작은 여름도 사랑스럽다.
2016.10.06 -
Welcome Little Miss
구역 식구들 중 곧 딸의 출산을 앞 둔 분이 계셔서, 색연필로 카드를 만들고, 도일리로 웰컴카드를 만들었다. 우리 집에서 구역 모임을 할 때, 깜짝파티를 열어줄 계획이었다. 그 분이 갑자기 못오게 되셔서 파티는 무산되었지만, 웰컴카드는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웰컴 리틀 미스 뿐 아니라 미스터로 변용할 수도 있고. Miss에 분홍색을 쓰게되는 것은 나의 잘못된 고정관념일까. 그래도, 핫핑크 물감을 찍어 바를 때엔 짜릿한 카타르시스!
2016.10.06 -
담을 타고 내려오는 인사
가로막힌 담일지라도 이따금 다정해 보일 때가 있다. 친구가 그 순간을 포착한 것 같다. "그냥..." 이라는 인스타그램 문구가 좋아서, 수채화로 그려보았다. 마치 담벼락이 나에게 "안녕? 그냥 한 번 쳐다봤어." 라고 말 거는 것 같다.
2016.10.06 -
가을 편지
추석은 평소 감사한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어서 참 좋은 명절이다. 단풍을 줏어 카드를 만들었다. 낙엽 한 장 한 장이 너무 예뻐서,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 외 다른 장식을 하지 못했다. 수채화에 와트만지. 봉투도 낙엽으로 봉한다. 다른 수식어를 찾지 못하겠다. 소명을 다 하고, 이제 소멸하는 낙엽 한 장에도 아름다움을 부여하시는 나의 주. 나의 노년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년 역시 그렇게 존귀와 품위 더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201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