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일상(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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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 그대라는 기적
"어떻게 나에게 그대라는 행운이 온 것일까..." 아이유, 밤편지, 2017 어제 밤, 침대 위에서 무심코 몸을 돌려 팔을 뻗으니, 마침 함께 누워있던 남편의 손 근처였다. 나의 손이 닿자, 남편은 그 손을 잡아주었는데,다정했다. 그 때, 기도 드렸다.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주님. *** 내가 어떤 죄인인지는, 주님과 나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어느 날 문득 나를 존귀하게 보아주고, 내가 하는 말들을 경이롭게 들어주며, 나를 아름답다고 감탄해 주었을 때 - 교만한 나는 (사랑을 믿지 않았고, 인간의 사랑은 반드시 바랜다고 생각했으며,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나는) 그를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았었다.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나에게 주고 싶어하고, 남은 시간을 함..
2017.07.26 -
우리 교회
우리 교회는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있다. 초창기에는 지금의 선교기념관 건물에서 오후 예배 한 번만 드렸는데,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 아름다운 공원 곳곳에 시원한 냉커피 주전자가 놓여있는 모습이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묘원의 비석을 하나하나 읽노라면 내 또래 젊었던 선교사님들께서 당시엔 미개했던 땅의 끝, 말이 안 통할 뿐 아니라 위생 시설 역시 말도 안 되었던, 방의 크기가 키에 맞지 않아 잠 잘 때조차 몸을 다 펼 수 없던, 이 멀고 먼 곳까지 오셔서 그 복음을 전하셨다는 사실이 눈물 겹게 감사했다. 그 분들을 통해 이 땅에 온 복음이 지금 내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되었다. 어제 밤 7차 공청회에서 미래준비위원회 중 한 분이 "생계를 희생하며 일했다" 하셔서 몹시 감사했다. 이 교회가 울타리 되어 주..
2017.04.25 -
Road FC 038 격투기 관람기
남편의 옛날 운동선생님이 출전하신다는 것 외 다른 아무 정보 없이, 정말 딱 보기에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우리 부부가 오직 선생님을 응원하려는 일념으로 온 낯선 이곳, 장충체육관. 본경기가 무엇이고 영건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어리버리 3시간 일찍 온 바람에, 신인들의 데뷰전부터 경기를 보기 시작하여 거의 4시간을 관람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들어올 때 홍보차 구운 달걀을 줬고 가장 큰 광고판은 축협이었으며 편의점에서도 육포가 가장 상석에 있었다. 이 생경한 분위기. 나는 선수들의 펀치보다 사회자의 발성에 더 감동을 받는 종류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곧 격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제일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커다란 스크린의 좋은 화질과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훌륭한 음질, 그..
2017.04.15 -
결혼 | 아이
약의 힘이 놀랍다. 언제나 임신을 염두에 두어 무릎 통증에 대한 진통소염제를 억제했는데, 지난 수요일 밤, 20분 동안 같은 자세로 서 있었더니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왔다. 마침 다음 목요일 오전에 대학병원 정기 검진이 있었고 임신도 확실히 아닌지라, 무릎에서 물을 뽑고 비스테로이드 성 소염제 주사를 맞은 후 처방해 주시는 약을 이틀 먹었다. 그래서, 지금 무릎의 상태는 최근 수 개월 간 가장 좋다. 사실 나는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불임클리닉을 찾아갔었다. 결혼 예식을 앞 두고는, 아이를 갖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먹는 약과 음식을 주의하기 시작한 터였다. 바르는 화장품과 비누, 샴푸의 성분도 꼼꼼히 따졌고, 직장을 그만 둔 후엔 미세먼지 많은 날은 아예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2017.03.04 -
결혼 | 팬텀싱어
오디션 예능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요즘 즐겨보는, ‘팬텀싱어’라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는 유능한 전문 음악인들과 함께 ‘마이클 리’라는 뮤지컬 배우가 나오는데, 그가 라는 3중창을 준비하던 팀에게 준 멘토링이 인상적이었다. 노래를 시작하기에 앞 서, 그는 자기 분량을 부를 때 남아있는 두 사람을 배려하라는 조언을 주었다. 즉 다른 두 사람을 위해 노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첫 구절은 바리톤의 독창이었다. 나는 평소 그 가수의 절제된 부드러움이 참 좋았었는데, 역시 그의 성품대로 점잖게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곧 연주를 중단시키고 조언했다 - 이 사랑을 고통스럽게 시작해야 한다. 미리 당신이 그 감정을 극한대로 끌어당겨 충만하게 시작해 주어야 이후에 부르는 사람들과..
2016.12.31 -
비닐예찬
사과를 반으로 잘라 둘 중 하나는 먹고, 다른 하나는 작은 비닐 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한다.매일 아침 힘 주어, 정갈하게 구분되어 있는 점선을 끊노라면, 비닐의 가벼움과 아무렇지도 않음이 새삼 고맙다. 환경 오염에 대한 걱정이 스쳐도, 분리수거는 죄책감을 얼마나 경감시켜주는지. 이 가벼움. 이 즉흥성. 이 순간성. 이 편의성. 만약 비닐이 심각했더라면, 끈끈하거나 질척였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기에 부담스러웠다면,이토록 사랑스럽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침마다 사과를 반으로 잘라 가벼운 마음으로 비닐을 뜯어 그 안에 넣을 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그 깨끗함에, 그 친절함에, 그 덧없음에 안심한다. 기꺼이 내일도 손 내밀 것이다.
2016.12.28 -
결혼 | 부동산
나는 우리 집을 매우 사랑한다.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귈 때,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던 그는 돌아가기 전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주면서 나의 등 뒤에 부끄러운 듯 이렇게 말했었다. "모아둔 돈은 OOO에요. 연금보험을 깨뜨리면 OOO을 더할 수 있어요. 그래도 집을 마련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지요." 당시 나는 결혼을 생각하고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돈은 회사의 부도 위기와 급여 연체에 시달리던 나에게는 무척 큰 액수였고, 눈물이 핑 돌았다 - 이 남자는 내가 무엇이관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려고 할까. 그리고 결혼을 결심한 뒤, 그가 여느 때처럼 집 앞까지 데려다주던 어느 날 저녁 나는 놀이터에서 한 번 더 눈물을 터뜨렸었다. 회사와 집의 사정 상 혼수를 준비하기가 너무 ..
2016.11.04 -
밤산책
날씨가 무덥다. 입추 지나면, 광복절 지나면, 한 풀 꺾인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정말로 지구 위의 얼음들은 녹고 있을까. 저혈압에 포도주를 써보라 하여, 한 모금 물었더니 걸을 힘이 났다. 아파트 없이 하늘을 찍어보았다. 저 빛나는 것은 별일까,인공위성이겠지. 방금 뺨에 닿은 물방울은 소낙비의 시작일까, 실외기에 맺혔던 H2O겠지. 가로등이 보름달처럼 아름다웠다. 나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날라가던 비행기의 깜빡거림도 내 곁을 스쳐 지나가던 블레이드의 형광 빛줄기도 낮의 더위를 피해 놀러 나온 아이들의 소란함 속에서 내 한 발자국 앞을 조심스레 앞서 가던 자동차의 붉은 브레이크등도. 살갗이 간지럽다. 모기도 없이 잘 관리된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을 마치면, 항히스타민을 먹어야겠다. 몸 밖의 것들을 대함에..
2016.08.18 -
내 영혼의 진통제
티비, 팟캐스트, 카카오톡은 스테로이드나 타이레놀 같다. 현실의 지리멸렬함을 달래고 일상의 고통을 뚫어 하루하루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작용과 금단현상이 생기듯 행여 내가 그들의 소음 없이 시간을 독대하는 시도라도 할까봐, 내 영혼은 후유증을 아우성친다. 중독, 게다가 내성. 처음엔 이토록 황홀하고 행복하며 유용한 것이 있었을까 싶었던 매스미디어와 SNS가 이제는 감흥 없이도 내 손 끝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늘의 고통은 위로하지만, 내일의 고통 또한 어김 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와 진통제는 좋은 약이다. 내 몸이 가진 (주님께서 주신) 자가 치유 기능이 결국 병을 이길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견딜 수 있도록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팟캐스트를 통해 들리는 메시지..
201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