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콰이사 내츄럴 커피, 그리고 화이트 트러플 소금의 기버터와 피치 스리라차

2018. 2. 5. 10:16맛있는/마크로비오틱

포도주를 전혀 모르면서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 계기는, 갤러리에서 막내로 일했을 때 경험한 한 모금 때문이다. 한 작가님이 전시 오프닝 리셉션에 쓸 와인을 직접 가져오셨는데, 나는 파티가 끝날 때까지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하고 있다가,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테이블을 정리할 때에야 비로소 병을 치우기 위하여 남은 몇 방울을 입에 댈 수 있었다. 향기가 코끝을 스쳤을 때, "응? 다른 와인들과 다르네!" 라는 깨달음과 함께 눈이 밝아졌고, 혀에 머물던 단 맛과 목구멍을 넘어갈 때의 짜릿함은 심장까지 여운을 남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아마도 나의 욱신거리던 발과 피곤한 눈 그리고 파티가 끝났다는 달콤쌉싸름한 안도감의 합작으로 이루어낸 풍미였던 것 같다. 

굳이 이름을 외운다거나 몇 년 산인지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포도를 햇살에 얼마나 노출시키고 어떤 통에 담아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서 그토록 다양한 맛과 향기가 형성된다는 사실은, 평소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 나에게도 매우 즐겁고 "문화적"인 일이다. 그래서, 그 맛과 향기를 따지고 음미하고 가리는 사람들이 재미있다. 남편과 나에게는 그저 "신" 맛이었는데, 그 소믈리에가 "아직 미성숙한 소녀가 연두빛 들판에서 봄 꽃을 한 아름 들고 있는" 맛이라고 했을 때, 아아, 그의 허세와 상상력이 나는 좋을 뿐이다. 회색빛 피곤한 일상에 주어지는 한 방울의 붉고 영롱한 위로.. 

마찬가지의 이유로 나는 커피도 좋아한다. 사실, 좋아하지 않으려고 - 빠지지 않으려고 - 노력했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 둔 뒤 많은 선물을 받았고, 나의 혀와 심장이 그 맛들을 기억하기 시작했으며, 가장 작고 싼 커피밀까지 사고 말았다. 나의 작은 사치. 원두를 선물받으면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올 일이 있을 때까지 아껴뒀다가, 보란 듯 그 앞에서 갈아서 물을 온 사방에 튀기며, 온도를 맞춘다고 이 그릇 저 그릇에 난리를 부리고 접대하는 일이 즐겁다 - 문화적이고 사치스럽고 향기롭다. 몇 분 코에 머물지 못하는 그 향기를 위하여 각별히 기억하고 시간을 들이고 아껴두고 생색내고... 하는 모든 일들이 즐거웁다. 

기쁘게도, 헤이리커피공장의 원두를 선물받았다. 바쁘고 피곤했던 주말과 주일을 지낸 월요일 아침, 집안일에 돌진하기 직전 전열을 가다듬으며, 정말 오랜만에 오직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리는 사치스런 의식을 치렀다. 왜냐하면 커피를 담은 봉투 위에 쓰여있던 이 말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콰이사 내츄럴. 상큼함과 화사함. 베리향. 가볍지 않은 바디감 뒤에 남는 은은한 과일의 산미. 왜 내게는 이 글귀들이 이토록 사랑스럽고, 철없이 사치스럽고, 너무나 문화적으로 느껴질까?  

화이트 트러플 소금의 기버터와 피치 스리라차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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