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리라 3. 느헤미야 1장

2018. 3. 20. 09:26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제니는 아버지로부터 성폭행과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 날도 아버지를 피해서 옥수수밭에 숨어든 포레스트와 제니. 절대권력이자 구조악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행동은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수준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하며 미래지향적인 제안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저를 새가 되게 해주세요.”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넓은 옥수수밭을 조감할 때, 새 몇 마리가 푸드득 날라갑니다. 

이어지는 포레스트의 나레이션: “하나님께서 그 날 제니를 새로 만들어 주지는 않으셨어요. 하지만 경찰을 보내주셨고 제니는 할머니랑 살게 되었지요. 나는 제니가 더 가까이 있게 되어서 참 좋았어요.” 어른들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자기 시선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는, 바보 포레스트 검프의 목소리가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합니다. 

절망 앞에 선 느헤미야는 울고, 먹지도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조국의 현실이 너무 비참하고 길이 보이지 않으며 당장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을 때, 이 기도는 (우리의 수준에서) 논리정연합니다. (1) 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파악하고 있으며, (2) 즉 누구에게 능력과 권한이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 (3) 수혜자가 그와 어떤 관계인지, 그래서 (4)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를 프리젠테이션합니다: 

- 저희가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된 것이 당연합니다 (1). 

- 주는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은혜”로우십니다. (2) 

- 그러므로 약속하신 70년이 다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4) 

- 우리는 당신의 백성들입니다. (3) 

다음 장에 나오지만, 느헤미야의 머리 속에는 이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의 순서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일이 되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모으거나 모금을 일으키거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닌, 즉 우리의 수준에서의 능력과 권한이 아닌, 진정한 주권자이자 권능자이시며 전쟁에 능하신 우리 왕의 준허가 필요했습니다. 최우선은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느헤미야 이전에 먼저 이 같은 내용을 기도하신 다른 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여호와께서 ...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스가랴 1장 12-13절) 

선지자의 환상 속에서 여호와께 간곡히 청원하던 ‘여호와의 사자’는 누구입니까? 히브리어로 ‘하 말라크’ - 얍복 강가에서 야곱에게 찾아오셨던 그 사자, 도망친 노예들이 홍해 앞에 갇혔을 때 뒤에서 이집트 군대를 막아주시던 그 천사, 기드온에게 찾아와 눈물 같은 이슬을 온 천지에 내려주셨고, 민족을 구원할 삼손의 탄생을 일러주셨던 그 분, 제 2위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원에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해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그 분은 이미 일하고 계셨습니다: 70년 동안, 국제정세는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페르시아의 편이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이집트나 헬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정복한 나라들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면서, 페르시아의 교육을 받아 페르시아에 충성하는 인재들을 고국의 관리로 보내어 변방을 다스리게 하는 민족유화정책이 펼쳐집니다. 이 정책에 힘입어 에스라와 느헤미야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와 제니가 그 지방의 경찰 조직과 복지정책을 알 수 없었듯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도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전방에서 어떤 천사가 승리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 외에는 저 천상의 왕의 존전 앞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오늘 간곡히 드리는 하루의 안녕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위한 기도에, 정말로 어떤 응답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저 천상의 왕의 존전에서 나를 향한 사탄의 고소를 친히 막아주시고 나를 대신하여 형벌 받기로 하신 그 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죄인의 편을 들어주시는 불의한 사랑, 이해할 수 없는 그 뜨거운 사랑이, 오늘도 2차원적인 기도 응답을 궁구하고 있는 저의 마음에 견고한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