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리라 4. 느헤미야 2장

2018. 4. 2. 00:37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벨기에의 노장 다르덴 형제의 영화 <언노운 걸 The Unknown Girl>에는 젊은 의사인 제니가 불법체류노동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노동자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봐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가 상처를 키웠습니다. 제니는 짧은 경고와 함께 아주 조심스럽게 상처의 붕대를 벗겨냅니다. “아플 거에요.” 

이렇게 되면, 관객들은 숨죽여 그 장면을 관찰하게 됩니다. 대개는 환부를 보여주지 않고 표정으로 고통을 전달하거나 시간의 경과를 표시하면서 생략하기 쉬운 장면일 것입니다. 과연 이 상처를 얼마나 드러내어 줄 지... 지켜보던 저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감독은 상처를 전부 드러내어 보여주었습니다 - 의사의 매우 조심스럽고 정교한 손길로, 천천히. 제니는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아주 예민하지만, 끈질기게 상처를 덮은 큰 반창고를 제거하였습니다. 그리고 꼼꼼히, 정밀하게 다 소독한 후 다시 아주 정교한 드레싱을 해 주었습니다. 이 롱테이크에서 다른 대사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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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늦은 밤 예루살렘의 폐허 - 그 거대한 환부를 보러 나갔습니다. (느헤미야 2장 12절)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쌔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장에서 느헤미야는 그 폐허의 소식만 듣고도 많이 울며 먹지 못했다고 했었습니다. 이제는, 그 상처와 실제 조우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무뚝뚝한 남성의 필체로 묘사된, 이 상처의 장면들에 더하여 다른 감정의 표현은 없습니다. 다만, 방백들이나 귀인들이나 제사장들이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만 합니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밤새 상처를 온 몸으로 삼켜 소화해 낸 느헤미야는, 다음 날 아침이 밝자 사람들에게 입술을 뗍니다, “자, 시작합시다!” 

정한조 목사님께서는 이 장면에서 느헤미야가 보인 반응이 세상의 전형적인 반응과 달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대한 실패의 상처 앞에서, 사람들은 그 일의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 질 사람을 찾기 마련입니다.  희생양 없이 넘어가면 상처가 치유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이 오래도록 방치된 탓을 아무에게도 돌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도우셨던 일을 간증할 뿐입니다. 

아마도 그가 상처를 삼켜내고 아무도 탓하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전 장에 기록되어 있듯이 긴 호흡과  짧은 호흡의 기도로 하나님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충분히 강조되어 있지만, 그는 아무 사람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분명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후일 하나님 본인께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고 우시며 가라사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눅 19: 41-44)” 결국 에스라의 성전도 느헤미야의 성벽도 모두 역사의 풍파 속에 무너졌지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 외치셨던 젊은 예수님은, 수백 년 전에 예루살렘의 폐허를 외롭게 돌아보던 느헤미야가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다른 아무에게도 탓을 돌리지 않고 그 상처를 모두 껴안아 십자가 위에서 궁극의 폐허가 되셨을 때, 우리에게는 그 누구도 허물지 못할 새 성전과 새 도성이 주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우리의 성전, 우리의 도성이 되어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약속이 저의 폐허 위에 얼마나 진실한 희망이 되는지요. 각자가 분투하고 있는 현실의 폐허 위에서 -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 모든 면면의 무너진 상처 위에서, 자꾸 어그러지는 다리를 곧추 세우며, “자 시작합시다!” 라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어줍니다. 적어도, 느헤미야보다는 우리들에게 훨씬 더 확실한 증거가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 죄를 안고 무너지셨던 우리들의 도성, 예수께서 정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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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다르덴감독이 길지 않은 영화에서 위의 장면에 그토록 긴 시간을 할애한 까닭은, 앞으로 제니가 the unknown girl - 이름없이 죽어 묻혀버린 소녀의 살인을 대할 때 그처럼 책임감 있고 끈질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인이 한 사회의 상처를 마주 대하고 치료하고자 애쓰는 일은 언제나 그렇게 미약하고 예민하고 진부하며 지겹도록 끊임 없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숭고합니다. 이에 대하여 훌륭하게 풀어낸 영화, <언노운걸>에 대해서 더 알고싶으신 분들은 다음 링크도 참조해 주세요. http://hungrysoul.tistory.com/80

PS 2. 성경 공부의 영상과 음성은 다음 링크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http://100church.org/home/board.php?board=cast&category=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