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리라 2. 시편 1편

2018. 3. 11. 23:59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임순례 감독님이 연출하신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첫 장면은 혜원이가 추운 겨울 밤, 혼자 눈길을 밟아 아무도 없는 빈 집으로 돌아온 모습입니다. 배가 고파 집을 뒤져보지만, 냉기 서린 집에는 한 줌의 쌀과 한 줌의 밀가루만 있을 뿐 먹을만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혜원이는 포기하지 않고 마당으로 나가더니 놀랍게도 꽁꽁 언 땅을 맨 손으로 파헤쳐 채 거두지 못한, 꽝꽝 얼어있는 배추를 꺼냅니다. 그리고는 배추된장국을 끓여서 한 줌 쌀로 지은 밥과 함께 맛있게 먹습니다. 

이 첫 장면은 앞으로 이 당찬 소녀가 어떻게 현실을 헤쳐 나갈 지를 함축하여 보여줍니다. 영화는 혜원이가 고향에서 겨울, 봄, 여름과 가을을 지내면서 철마다 지어 먹는 음식들을 맛깔나게 소개하고 아름다운 한국 농촌의 사계절을 화면에 담았기 때문에 자칫 소녀감성의 행복한 영화로만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편모슬하였던 혜원이가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과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며 공부를 병행하는 힘겨운 생활에서 오랜 시간을 투자했던 임용고시에 실패했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전혀 보이지 않는 깜깜한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추운 겨울 버림받아 비어있는 이 집 안에는, 어른인 저의 눈에도 소녀가 먹을 것이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혜원이가 언 땅에서 맨손으로 배추를 캐내고 묻어 놓은 독에서 된장을 찾아 배추된장국을 끓여 흰 쌀밥과 함께 호호 불며 먹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우리 구역의 청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래의 그림이 그려질 만한 직업과 회사는 너무나 경쟁이 심합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성실한 학생의 시절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TV 드라마에서 본 ‘평범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모임에서도 저는 한 달의 생활비를 기도하는, 저보다 훨씬 어린 구역 식구가 누리는 하늘의 평안을 경이롭게 들었습니다. 딱 맞는 등록금과 방세를 준비해주시는 하늘의 만나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그들이 현실과 고투하는 모습이 미성숙한 제 눈에는 마치 언 땅을 파헤치는 여린 손들 같아서 안타까울 때도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알 지 못하는 기이한 손길로 그들을 인도해주고 계셨습니다. 

혜원이는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사계절을 고향에서 지내면서, 엄마가 젊음을 바쳐 가꾸어 둔 작은 숲은 혜원이었고 그 농촌의 생활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혜원이는 자기 안에 엄마의 요리가 심겨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고향에 되돌아왔을 때 살아갈 모든 것은 이미 자신 안에 내장되어 있음을 비로소 이해합니다. 자신이 심겨져있던 고향은 언제나 떠나고 싶고 도망치고 싶었던 시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숲을 가꾸어 낼 준비가 된 것입니다. 

정한조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방생한 잡목이 아니라, 누군가 마음과 정성을 다 하여 시냇가에 심어준 나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심은 나무라 함은, 주인이 있다는 뜻이고 누군가 돌보아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뿌리가 깊어 수원에 닿은 나무는 어떤 가뭄이 와도 생명의 물을 마시며 자라납니다. 그리고 먼 후일, 이 생명의 물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거하라.” 이 유언의 몇 시간 후, 그 분은 십자가 위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달콤한 포도주의 만찬만을 남기셨습니다. “나를 기억하라.” 

내 안에 거하라. 너희가 심겨진 그 곳, 내가 너를 심어둔 그 곳을 받아들여라. 어쩌면 우리는 오늘 주어진 이 생명이 그리스도의 피값임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팍팍한 현실에서, 엄마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던 혜원이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개의치 않으신다고 미리 실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무너지는 저에게, 주께서는 거듭 말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 건조한 세상으로 자꾸 혼자 뛰쳐나가려 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수인 내 안에 있어라.” 청년들이 마주 대한 현실이 너무 혹독한 겨울 같아서 연약한 가슴만 움켜쥐는 저에게, 아이들은 오히려 이렇게 간증해 주었습니다. “저의 산산조각 난 계획의 파편들을 모아서 새롭게 그려주신 주님의 지도는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오늘도 그 기묘한 은혜로 살아갑니다.” 네, 주님. 제 계획보다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편이 훨씬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