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리라 5. 느헤미야 3, 4장

2018. 4. 17. 13:46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아이작 드네센 Isak Dinesen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바베트의 만찬 Babette's Feast>의 배경은 19세기 덴마크의 어촌 마을입니다. 그 작은 마을을 신앙으로 지켜주던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사람들 사이에는 시기와 다툼, 분노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한 편, 평생 결혼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을 섬기던, 목사님의 두 딸들에게는 바베트라는 이름의 프랑스인 가정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프랑스 복권이 당첨되어 큰 돈이 주어지자, 바베트는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만찬을 준비하겠다고 자청합니다. 강퍅한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본의를 의심하며 절대 음식을 칭찬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합니다. 그러나 바베트는 묵묵히 재료를 주문하고 다듬으며 흔들림 없이 준비를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만찬 당일, 12인분의 최고급 프랑스 코스 요리를 만드는 바베트의 모습은 흡사 전쟁을 치르는 용사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녀의 요리를 맛본 사람들은, 아무리 시골뜨기라 해도 그 고상한 경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격 없는 그들에게 흠뻑 주어진 천상의 만찬 세례는 그들의 마음을 녹여서 화해와 용서의 장을 열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돌아간 뒤, 두 자매는 바베트가 그 날의 저녁 식사를 위하여 당첨된 돈을 모두 써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바베트! 그럼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해...!” 

그러자 전쟁이 끝난 테이블을 정리하던 바베트는 우아하고 품위있게 몸을 돌려 자매들을 그윽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프랑스 혁명으로 온 가족을 잃고 덴마크로 피신해 오기 전까지 그녀는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의 수석 요리사였습니다. 가정부로 자매들을 섬기던 14년 동안에도 세계 최고의 요리는 그녀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의심을 하고 비방을 해도 흔들림 없이, 기꺼이 자신을 만찬에 내어줄 수 있었던 까닭은 그녀가 자신 안에 간직된 것이 예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고, 신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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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성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과 도비야는 비웃습니다.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더 나아가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며 공격해올 태세입니다. (느4:8) 그러나 느헤미야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는 이 일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기도드렸을 뿐, 사람들에게는 전혀 동요하지 않으며, 한 손에는 연장을, 다른 한 손에는 무기를 잡고 묵묵히 성전 공사를 이어나갑니다. 

정한조 목사님께서는 비난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나를 공격하거나 나의 마음을 찌르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얼굴을 나의 하나님 - 전쟁에 능하신 왕께 돌리는 것입니다. 나의 일에 하나님을 개입시키고 그 분을 나의 변호사로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게 주어진 일을 꿋꿋이 해 나가는 것입니다. 마치 바베트가 인간의 싸움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 안의 요리를 믿어 만찬의 주재가 되듯이 말입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자기를 위해 하는 일과 하나님이 무슨 상관입니까? 당신이 생업으로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편들어 주실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제가 얼굴을 하나님께 향한다고 해서, 그 분이 나의 일에 개입하실 것이라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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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찌르는 칼 같이 그들이 종일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성경은 시편 42편 저자의 경험이 첨단에 이르러 십자가 위에 재현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바베트는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당첨된 복권을 희생하였지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치르신 희생은 전 우주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사람들이 찌르는 비웃음에 대응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의 얼굴을 간절히 바라보셨지만,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얼굴을 외면하셨습니다 - 잃어버린 저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으셔서,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보시기 위하여,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아들의 얼굴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 - 우리가 세상에서 맞고 들어오면 나가서 편들어주시고 때로는 싸워주시는 아빠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이 글을 우리 구역 식구들을 위하여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진상 손님을 상대하며 편의점이나 카페, 상점, 택배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우리 청년들을 위하여. 우리들이 얼마나 고귀한 하나님의 자녀인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상을 부릴 수도 있고 모욕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디 흔들림 없기를, 마음 상하지 말기를, 주어진 길을 꿋꿋이 가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지불하신 그리스도의 만찬을, 나의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뒤틀리고 악의 가득한 세상, 매일 교만과 상처를 마주 대해야만 하는 삶 가운데 어떻게 버틸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