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언노운 걸 - 다르덴 형제

2017. 6. 9. 18:27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죄책감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짓는 특징이다.”
(다르덴 형제 인터뷰 중에서, 동아일보, 2016년 6월 1일)

포털 뉴스와 여러 SNS 경로를 통해서, 수많은 강도 강간 살인 방화 테러의 소식을 듣지만, 나의 일상은 평온하다. 오늘도 슈퍼마켓에서 만난 사장님은 친절하게 짐을 들어주셨고, 나 역시 자전거를 타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는 꼬마를 참을성 있게 도와주었다. 영화 <언노운 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평범하다. 감사한 마음을 수줍게 작곡한 노래로 표현하거나, 급작스럽게 약속을 바꾼 동료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한 달만 더 기다릴게요.” 라고 위로하거나, 2층에서 두고 간 빵을 던져주거나, 정성껏 만든 와플을 나누어 준다.

다만, 날카롭게, 그 unknown girl, 이름없는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만 있을 뿐이다. 마치 뉴스처럼, 영화는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고 말로 묘사만 해준다. 그러나 주인공인 의사 제니는 그러한 경찰의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깊이 상처를 받는다.

감독은 정말로 이 상처를 얼마나 드러내어줄까...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던 장면 중 하나는, 제니가 불법체류 노동자의 상처를 치료해줄 때였다. 뉴스처럼, 말로만 끔찍하다고 묘사할까. 그러나 제니는, 즉 다르덴 감독은,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의 상처를 벗겨내었다. “아플거에요.”라는 의사의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상처가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제니는 아주 부드럽게 천천히 -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아주 예민하지만 끈질기게 상처를 덮은 큰 반창고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꼼꼼히 소독한 후 다시 아주 정교하게 드레싱해 주었다. 신분증을 검사할까봐 큰 병원에 가지 않으려는 그 환자에게, 계속하여 3차 병원 진료를 반드시 받으라는 단호한 충고를 반복하던 그녀는 그토록 용감하게, 지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고, 또한 어떤 이들로부터는 지루하고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일 것이다. 또한, “당신은 아픈 세상을 향해 비난하거나 무감각해지는 것 외, 다른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대개 그러한 행동은 지루하고 진부하며, 매우 연약한 법이고, 지겹도록 끊임없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숭고하다. 

제니는 그 상처의 범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망자가 떠나는 길에 가장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기 위하여 소녀의 이름을 찾아주려 할 뿐이다. 다르덴 형제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죽은 소녀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제니의 이러한 모습은 다른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하는 촉매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동범인 제니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모습은 마치 우리 죄를 지신 주님 앞에서 우리가 죄를 털어놓고 자유로워지는 신앙의 여정과 닮아있다. 

이 예순을 훌쩍 넘긴 거장들은, 이제 사회의 거대한 상처 앞에서, 한 여인의 작은 어깨 너머로 흔들림 없이 따뜻한 치유를, 혹은 그 치유의 희망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이 많아 늙어 잘 숨 쉬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등 뒤에서 원인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청진하는 제니의 눈을 시작으로, 나이 많아 잘 걷지 못하는 할머니를 기꺼이 부축하는 제니의 팔을 끝으로. 이렇게나 희망이 흔들림 없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매일의 고된 일상도 이 희망 앞에서 노동의 신성함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복 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