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야기 |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자화상

2016. 9. 27. 20:41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암스테르담에 갔으니, 으레 반고흐 미술관에 가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한 나로선, 사실 그에 대해 너무 많은 책과 사진을 보았으므로 별 기대는 없었다. 아주 오래 되어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연인을 만나러 가는 통과의례처럼 그렇게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처음 마주친 그의 그림은 이 자화상이었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분명 큐레이터도 같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이 그림을 관객들의 동선 맨 처음에 위치시켰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위의 포토카피는 그 감동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테니 최대한 찬찬히 묘사해보겠다. 


먼저, 그림을 그려본 사람들, 특히 초상화를 그려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 가장 신나는 순간은 눈동자의 광채를 그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고흐는 자신의 눈동자에 빛을 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역광이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그림자에 잠겨있고, 그는 빛을 등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빛은 캔버스 위로 쏟아지고 있다. 


화가가 자신을 표현할 때, 캔버스 앞에서 붓과 물감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그가 자신을 화가로서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뜻이다. 아주 옛날에는 화가라는 직업이 지금과 같은 '예술가의' 아우라가 없었으므로 - 그들은 technician, 기술자에 더 가까웠다 - 유명한 화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화가로서의' 자화상을 그려서 예술가의 자부심을 특별하게 표현하곤 했다. 


고흐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화가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며 그림 그리는 일을 사랑했을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얼굴은 그늘에 잠기게 하고 모든 빛은 캔버스 위로 쏟아지게 했다. 즉, 여기에서 피사체는 고흐가 아니라 캔버스, 즉 그림인 셈이다. 그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인생보다 그림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는 듯 하다. 


그림을 보는 순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던 까닭은, 내가 그 인생의 비참한 말로를 알기 때문이다. 아, 그 브러쉬 스트로크! 실제 그림을 보면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물감을 하나 하나 찍어 그렸는지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려본 사람들이 그 붓터치를 본다면, 아마도 한 순간에 깨닫게 될 것이다 - 화가가 얼마나 성실하게, 어떤 속도로 물감을 찍어 붓을 캔버스에 정성껏 갖다 대었을지. 어떠한 신념으로, 어떤 믿음으로 그림을 대했을지. 차곡 차곡 구축된 그 색깔들은 또한 그 채도가 너무 순수하여, 나는 외롭게 죽어간 이 화가의 젊은 시절, 그 마음 안의 밝고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믿음이 가득 차 있는 자화상에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가 그림 안에서 믿었던 것들. 그가 예술가로서 가졌던 숭고한 정신들. 그 고상한 영혼의 힘이 느껴져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실제의 그는 전혀 세속적이지 않았고 세상을 헤쳐나갈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둠에 묻힐 뻔 했었다. 그러나, 그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하여 온 힘을 다 했던 그의 동생 테오 (테오도 그의 죽음 후 6개월만에 죽었다), 그리고 그 미망인의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으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눈에 기적처럼 닿아서, 후세의 그 그림들은 찬란한 빛을 보게 되었고, 결국 이 자화상이 쓰레기통이나 고물상에 버려지지 않은 채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른 뒤 저 지구 반대 편 작은 반도 국가에서 온 나의 눈과 가슴에까지 선사된 것이다. 


나의 마음이 아픈 까닭은 그가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는지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 어떤 믿음은 하루만에 응답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의 믿음은 수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수 십년이 걸려서 결실을 보기도 하며, 이렇게 죽은 후에야 그 영광이 주어지기도 한다. 세속의 바람에 마른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나에게, 이 그림이 주는 감동은, 즉 이 화가의 고상한 영혼이 주는 감동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가 세상을 대했던 태도. 그가 가졌던 신념. 그 영혼이 추구했던 구원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실행해 가던 그 용기와 성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