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2) 20170312 베드로

2017. 3. 13. 13:04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카라바지오 Caravaggio의 <The Denial of Peter 베드로의 부인> (1960),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 있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2017 구역성경공부 두 번째 시간의 교안 4번, “예수님께서 ‘함께 가자’고 부탁하셨던 제자들의 그 이후 행적”에 참고할 수 있는 그림입니다.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지오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29 September 1571 – 18 July 1610)는 렘브란트보다 먼저 캔버스에서 빛을 그렸던 화가입니다. 전기가 없던 당시 실내의 조명은 촛불이나 등불에 의지해야만 했고, 화가들은 그 희미한 빛이 만들어내는 드라마틱한 반사와 그림자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 화가들은 밤에도 마치 대낮처럼 음영의 공식을 따라 그림을 그렸지요. 입시를 위해 그림을 배우던 시절, 저도 그들처럼 나중에는 보지 않고도 입체감과 음영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주의를 시작한 화가, 카라바지오는 보이는 대로 그릴 뿐 아니라 성경의 해석까지도 자신의 주관을 따랐고, 그래서 당시 교회 권위자들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대표적이었던 몇 몇 사건 중 하나는 죽은 성모 마리아의 발을 더럽게 그렸던 그림, <성모의 죽음>이었습니다. 교회는 성모의 발을 깨끗하게 그리라고 명령했지만, 화가는 '가난했던 성모의 발은 반드시 더러웠을 것'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The Death of Virgin, 1606


<베드로의 부인>은 마태복음 26장 후반부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하며, 사도는 필사적으로 공포와 싸웁니다. 예수와 같은 당으로 몰리면, 자신도 그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닭울음 소리는 스승에 대한 일말의 양심을 일깨워주었고,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맨얼굴, 조금도 의로울 수 없는 자신을 깨달으며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카라바지오가 붙든 순간은, 고통스러운 깨달음의 직전, 얄미운 여종이 자신을 갈릴리 사람이라 몰아붙이고, 베드로 사도는 ‘저주하며’ 부인해야만 했던 순간입니다. 이 때 이상한 것은 베드로 사도의 손 제스츄어입니다. 만약 성경의 묘사대로라면, 그의 손짓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휘휘 내저으며 ‘아니라’는 모양을 그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카라바지오는 베드로 사도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고뇌에 찬 모습으로 인정하는 듯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게다가 베드로 사도의 얼굴은 카라바지오의 자화상입니다.(1) 


화가는 우리 모두가 베드로와 같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제 구역 식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성경공부에서도, 우리들은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매일 못 박고 있는지에 대해, 그 신비로움에 대해 한참 토론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못 박는다는 것, 우리의 모든 수치와 아픔과 상처를 못 박는 그 자리에, 나의 가장 사랑하는 주님께서 계셨고, 또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천사도 더 살펴보기를 갈망하는 주제라고 (벧전 1:12) 베드로사도께서도 말씀하셨지요. 


거장의 붓은 모닥불의 음영이 만들어내는, 고뇌에 찬 베드로의 이마와 촉촉한 눈가에서 춤 추는 것 같습니다. 그림 속 베드로의 손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 바로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잡혀가야했고,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했던, 그 죄인입니다.” 화가도 깨달았었고, 우리도 어제 구역 식구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며 한 번 더 되새겼던 그 사건. 결국, 마음과 뜻과 힘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 즉 예수를 사랑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재철 목사님의 가르침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대단하게 여기기 쉬우나, 사실 믿음은, “우리를 향한 그 분의 믿음”을 믿는 것입니다.  



설교 MP3는 100주년기념교회 홈페이지(100church.org)의 "수요성경공부" 메뉴에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동영상보기는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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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에서 사도의 얼굴이 옆모습이기 때문에 자화상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카라바지오의 다른 그림을 함께 보여드릴게요. 의기양양하게 승리에 찬 모습으로 그려졌던 다른 전통적인 그림에서의 다윗과는 달리, 카라바지오의 그림에서는 아직 앳 된 소년 다윗이 입술을 깨물며 끔찍함을 참는 표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골리앗의 얼굴은 카라바지오의 자화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