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 NY |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 - 구역모임

2017. 2. 23. 13:01글/New York, New York

Photo by Ben Duchac, https://unsplash.com/collections/30630/nyc?photo=96DW4Pow3qI


어떠한 장소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구역 모임은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업 전문 변호사, 뉴욕필하모닉의 트롬보니스트와 하피스트, 전직 의사이자 작곡가, 동유럽에서 온 건축가, 회계사, 디자이너 등등. 한국에서는 20대 청년들이 모이는 공동체만 경험했던 나에게 청년부터 노년 그것도 다양한 인종과 직업에 걸쳐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 모임은 특별했다. 


처음 구역 모임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을 때, 얼마나 망설였던지. 언어적으로도, 문화적로도 (극동아시아에서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여자애로서) 경제적으로도 (IMF 시기의 유학생이었고) 신분적으로도 (F1 비자의 학생이었므로) 나는 너무나 이방인이었다. 처음으로 센트럴 파크 웨스트의 고급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던 두려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평소 나와 전혀 상관 없던 부촌의 아파트, 멋진 가드들이 친절하게 웃으며 (그러나 경계를 늦추지 않고) 나의 신분을 확인하여 복잡하고 화려한 내부의 인테리어로 이어지던 문을 열어주었을 때, 약간 겁에 질려 분명 꾀죄죄해 보였을 나의 눈 앞에 나타났던 사람들은 전형적인 푸른 눈과 금발의 짐 Jim과 마고 Margot였다. 그들의 큰 환대를 받으며 나는 좀 얼떨떨 했는데, 그들은 왜 구역에 자신들 두 명 밖에 없는지를 고민하면서 마침 구역 식구를 좀 보내달라는 기도를 드렸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나는 매우 즉각적인 기도 응답이었던 것이다.  


기도 응답은 계속 이어졌다. 그 다음 주에는 백발의 노부부 Jac 잭과 Barbara 바바라가 우리 모임에 왔고, 약혼한 커플이었던 Demian 데미안과 Sarah 사라, 그리고 갓 결혼한 커플 Eun 은과 Sean 션 부부가 차례대로 구역 식구들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뉴욕에서 자리 잡은 유능한 전문가들이었고 팀 켈러 목사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이 여러 모로 부족한 나를 얼마나 사랑해주었는지. 나는 1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이 가난한 나를 위해 평소 즐기던 레스토랑에 가지 않고 함께 값싼 베트남 음식점을 만남의 장소로 잡았으며, 구역 모임 이벤트로 센트럴파크의 공짜 음악회를 잡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생색 없이, 서로 이미 합의한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임 가운데 가장 낮았던 나의 삶의 수준으로 내려와 주었던 것이다. 


“네가 그 단어를 틀렸을 때, 너의 진심이 더 잘 전달되었단다.” 

평소 강의실에서는 통하지 않던 나의 한국 악센트도 구역 모임에서는 전혀 어려움 없이 이해되었다. 이제 나는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능숙한 혀가 아니라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내가 영어를 버벅거리다가 정정했는데, 잭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따뜻한 눈빛으로 이렇게 답해 주셨다, “네가 그 단어를 틀렸을 때, 너의 진심이 더 잘 전달되었었단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국에 돌아온 나는 이제 더 이상 이방인도 아니고 사회의 하층도 아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또는 음식점에서 연변 사투리나 어색한 동남아 악센트가 들리면, 그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주민등록번호가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와 언어 가운데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정체성과 보호와 품위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그 때 뉴욕에서 받았던 친절과 사랑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돌아보곤 한다. 이제는 한국에서 내가 그 사랑의 빚을 갚을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