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 NY | Tribute in Light 빛 속의 추모사

2017. 11. 13. 18:09글/New York,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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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아침, 맨해튼 34번가의 작은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던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지각을 한 직원이 말하기를, 월스트릿부터 걸어왔으며 쌍둥이빌딩에 매달린 사람들이 결국 손을 놓고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부시대통령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울렸습니다, “자유에의 침공...” 제가 있던 미드타운까지 매캐한 냄새가 풍겼고 휴대전화는 불통이었으며 모든 공공교통은 멈췄습니다. 맨해튼을 빠져 나가기 위하여, 브롱스로 퀸즈로 뉴저지로 브룩클린으로.... 섬과 이어진 다리들은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저도 인파에 휩쓸려 99번가에 있던 집까지 걸어가면서, 한국도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이렇겠구나 생각했었지요.

이기적이고 차가운 도시였던 뉴욕은, 그 사건 이후 변했습니다. 골목마다 교회들이 촛불을 밝혔고, 밤마다 기도드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쥴리아니 시장이 "I Love NY" 로고가 새겨진 야구모자를 쓰고 TV에 나와서 36시간 째 일하고 있다면서 했던 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중동인들을 보호해달라고 시민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증오범죄를 염려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너무 많은 기부 물자가 오고 있어서 처치곤란이니 방송을 잘 지켜보아 달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방송에서 이불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낸 지 두 시간 정도 있으면 다시 제발 이불을 그만 보내달라는 앵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유학생이었던 저는 헌혈을 하려고 연락했지만, 수혈이 넘쳐서 피를 보관할 곳이 없으니 미안하지만 거절해야겠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뉴요커들은 비행기가 빌딩을 향해 돌진하여 뚫고 들어가던 장면에서 엄청난 증오를 읽었습니다 - 왜 세계가 미국을 미워하는가. 매스컴은 과연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어떻게 추모해야 할지를 1년 내내 토론했습니다. 다음 해 돌아올 첫 번째 추모일을 공휴일로 해야할 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토론하고, 그라운드 제로에 다시 빌딩을 세워야 하는지 아니면 상흔을 간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토론하고, 그렇게 끝없이 토론을 하다가 2002년 9월 1일이 되었을 때, 그들이 보여준 추모의 방식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단, 희생자들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계속 삶을 이어가는 것을 바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술의 도시답게 오케스트라들이 네 개의 공원에서 각각 그라운드 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레퀴엠을 연주했습니다. 폐허 위에서는 희생된 2,763명의 이름들을 모두 한 명 한 명 초혼했습니다. 의례적인 추모사는 없었습니다. 그 행렬에 동참했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조차 주어진 이름들을 부른 뒤에 다른 어떤 연설이나 말없이 워싱턴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돌이나 시멘트로 지어진 빌딩 대신, 위의 사진과 같은 빛의 탑을 쏘아 올렸습니다. 

“Tribute in Light, 빛 속의 추모사“라고 명명된 이 인스톨레이션은, (물론 이 이름도 긴 토론 끝에 정해졌다고 합니다만) 망가진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즉각적으로 회복하려는 의도가 동기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2002년 3월 11일부터 4월 13일까지 일시적으로 전시했지만 이후 매 년 추모일마다 다시 쏘아올리곤 합니다. 역시 수다스러운 뉴요커들답게 이 작품이 새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나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토론하곤 했습니다. 연료는 Lower Manhattan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식용 기름 찌꺼기를 쓰는데, 사고 당시 쥴리아니 시장은 무엇이든 돕고 싶어하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습니다, “정말 돕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Lower Manhattan에 식당을 갖고 있다면, 식사 때마다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주십시오. 그것은 정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져서 테러의 타겟이 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죽임 당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가장 많은 희생자들이 소방관들이었다는 점때문에, 저는 알카에다의 분노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러나, 이유불문하여 뉴욕이 보여주었던 태도는 성숙했습니다. (그것은 미국 전체의 태도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우리 나라 역시 아파트도 무너졌고 다리도 무너졌고 백화점도 무너졌고 배도 가라앉았었지만, 이렇게 품위있게 '위로' 하는 모습과, 그 희생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고상하게 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밤마다 챨리 로즈 쇼에서 왜 세계가 미국을 미워하는지에 대하여 서로 설명하고 토론하던 논객들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교회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왜 성전인지"를 진지하게 질문하던 청년들의 표정도 떠오릅니다. 학교에서 중동 출신 친구들이 "진정한 이슬람은 테러하지 않습니다."라는 팜플렛을 나눠주던 모습도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