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8) 바벨

2017. 5. 16. 01:28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안젤름 키이퍼 Anselm Kiefer, Bohemia Lies by the Sea, 1997


미술대학에 다니던 시절, 제 옆 자리에 앉았던 한 친구가 자신이 그린 추상화를 설명하고 있었어요, "(구불구불한 모양을 가리키며) 이것은 IMF를 상징하고요..." 정말로, 그림에는 돈처럼 보이는 모양도 보이고 슬퍼보이는 얼굴도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시더니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미정아, 오늘부터 네가 너를 '미정'이가 아니라 '현지'로 부르기로 했다고 쳐보자. 그런데, 네가 미정이인지 현지인지는 사실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거야. 너랑 이야기해보고, 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고, 네가 그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 때에야 비로소 너는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되지 않겠니? 정말 좋은 그림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소통이 되는 법이야. 사실 이것은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이다." 


멍하니 설명을 듣던 저는, 선생님께서 '바벨탑'을 언급 하셨을 때 한 대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었어요. 많은 예술가들이 자아의 탑을 쌓아올리면서 대중과의 소통에서 멀어지지요. 교수님께서는 그것을 바벨이라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어요.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창 11: 4)" 

아마도 예수의 십자가를 알 지 못하는 사람들, "스스로 흩어짐을 면하기 위하여 필사적인" 사람들은 모두 이 모토를 따를 것입니다. 어떤 취준생에게 "그 성과 대"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일 수도 있고, 어떤 화가에게는 예술의 이상일 수도 있을 거에요. 이재철 목사님께서는 심지어 '교회'가 크리스챤들의 바벨탑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 외 다른 것을 푯대 삼는 자는 결국 그 자신이 푯대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흩으신다고 가르쳐 주셨지요. 


세상은 자아와 집념의 탑이 높을수록, 그리고 그 야심과 노력의 규모가 클수록 앙망하고 칭찬하지만, 얼마나 많은 경우 우리는 그들의 결국이 고독하고 외로우며 쓸쓸한지... "언어의 혼잡" 즉, 소통의 단절인지를 보게되는지요.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산산조각으로 흩어지셨던 그 분, 자신을 철저히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으셨던 예수님의 복음은 전 우주적 보편성을 획득하였고, 온 세계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다양한 민족들과 외로운 섬들도 결국 그의 이름을 한 목소리로 찬양할 것입니다. 실제, 큰 대륙과 섬들과 바다를 건너 이 작은 반도 국가에 살고 있는 저에게까지 그 분은 "소통"되었어요. 양화진 언덕에 묻힌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이 땅 위에도 거룩한 교회, "바벨이 아닌 하나님의 성"이 세워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지난 주일, 담임목사님께서 네 분의 후임을 말씀하셨을 때, 마음 깊이 찡- 하고 눈물겨웠어요. 그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말들과 오해와 억측에 괴로운 과정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말없이 희생해주신 준비위원들과 자신의 큰 부분을 꺾으셨을 담임 목사님을 생각하며, 깊이 감사했어요. 그렇게, 먼저 "흩어져주신" 교회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 안에 교통하여 주시는 성령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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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역시 미술대학에 다니던 시절, 어떤 교수님께서 "선을 하나 그어도, 마음 속으로 신을 간절히 바라며 그리면, 보는 사람들에게 1%라도 그 신념이 전달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정말일까. 이 무슨 신비주의적인 발상이람!' 저는 믿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안젤름 키이퍼의 그림을 직접 보았을 때, 비록 캔버스 위에는 지푸라기나 철사와 같은 쓰레기들이 가득 덮여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전쟁의 폐허와 역사의 잔해를 그렸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마도 그 교수님께서 말씀하고 싶으셨을, 어떤 '아우라'에 대해서 저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칸딘스키는 자신의 빨간색이 트럼펫 소리를 연상시키기를 바랬었다고 해요. 저에게 키이퍼의 그림은 바그너의 음악처럼 웅장했어요. 그림을 보는 순간 즉시, 인간과 인생과 역사에 대해서 그처럼 고색창연하고 거대한 해석이 전달되다니! 바벨탑을 이야기해주셨던 교수님의 말씀이 맞았어요: 위대한 작품은 몇 마디 말의 필요 없이 소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