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26) 마가

2017. 12. 4. 12:58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Tintoretto (Jacopo Comin, Jacopo Robusti), Miracle of the Slave, 1548 

틴토레토는 베네치아에서 최고의 권위자였던 그의 스승 티치아노 (Tiziano Vecellio)와 대립각을 세웠던 화가입니다. 괴팍하고 고집 센 틴토레토를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를 이단아 취급하던 당대의 화단도 그의 드라마틱한 원근감과 속도감, 화려한 색채와 개성적인 구도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경박한 화풍으로 심지어 작품을 덤핑하여 미술계의 질서를 교란시켰다는 평가와, 그 일탈은 당대 기득권이 장악한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반항이자 아방가르드한 미술적 시도였다는 평가가 서로 엇갈립니다.  

위의 그림은 그에게 명성을 안겨 준 첫 번째 그림이었습니다. "노예를 구출하는 성 마가의 기적" 이라는 제목의, 가로 세로 415x541cm 크기 작품입니다. 관객이 그 앞에 서 있다면, 아마 그림의 좌측 구석에서 이 장면을 훔쳐보는 사람처럼, 실제 이 상황 안에 들어가 있는 듯 착각이 들겠지요. 그가 구사한 극적인 원근법, 누워있는 노예와 위에서 날아내려오는 마가 사도, 그리고 태풍의 눈처럼 그 둘을 둘러싼 군중들이 회오리치듯 돌아가는 구도는 당시에 획기적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티치아노는 틴토레토가 아닌 베로세네를 후계자로 지목했습니다. 회화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티치아노의 막강한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틴토레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테크닉을 시험하는데 있어서 질풍노도와 같이 자신의 작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면, 신앙에 귀의하게 됩니다. 그가 죽기 불과 몇 달 전 완성한 "최후의 만찬"은 그의 신앙과 예술성을 집대성한 작품이었습니다.  

Jaccopo Tintoretto, the Last Supper, 1592-1594 

틴토레토가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에는 스승에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결국 말년에 이르러 거장으로 인정받으며 독실한 신앙에 귀의했다는 사실은, 마가 사도의 일생을 떠오르게 합니다. 마가복음이라는 걸작을 남긴 마가 사도도, 젊었을 때에는 힘겨운 전도 여행 중간에 일행을 배신하고 되돌아갔었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두 번째 전도 여행에서 그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두려워했던 사울을 "바울"로 교회에 소개했던 바나바는 이번에도 역시 마가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주려 했습니다. 

이 때, 두 사도가 대립했던 일에 대하여 한글 성경은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고 합니다. 여기서 쓰인 단어가 '파록쉬스모스 (paroxusmos)' , 문자적 의미는 "누군가에게 계속 잽을 날려서 그가 참지 못하고 반격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 jabs someone so continuously that he/she "must" respond" 입니다. 똑같은 단어가 히브리서 10장 24절에는 이렇게 쓰였습니다, "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어떻게 같은 단어가 이렇게 상반된 의미로 번역될 수 있을까요? 한 쪽은 "다퉜다" 하고 다른 한 쪽은 "격려했다" 합니다. 여기에서 공통된 점은 '상호 발전적인 관계성' 입니다. 이 단어가 원래 지니고 있는 의미의 본질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 상대방 때문에, 각자의 어떤 부분이 일어나게끔 촉매 작용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바울 사도와 바나바 사도가 서로 대립했다고 묘사되어 있는 부분에서 이 잠언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27:17)" 

바울 사도의 "의"와 바나바 사도의 "자비"는 둘 다 모두 마가가 위대한 사도로 거듭나게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였습니다. 부모의 사랑에서도 둘 중 하나가 결핍되면 자식은 괴물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그러합니다. 의와 자비는 우리들에게 둘 다 모두 절실합니다. 어떻게 이 상반된 가치가 함께 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 받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악한 죄인인지 치를 떨게 되는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기이한 사랑을 받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2017년을 돌아보며 참으로 많은 자괴감과 자책이 밀려들 때,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익한 종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네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각주:1] 

  1. 너는 어서 속히 내게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4:10-1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