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라라랜드 La La Land - Damien Chazelle

2016. 12. 20. 16:46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남편은 무척 바빴고, 주 중이든 휴일이든, 자기 전이나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나 언제든, 노트북과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기념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지만, 나는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무언가 로맨틱하고 우스꽝스런 영화를,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싶어서, 아껴둔 영화 티켓으로 La La Land를 보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진부하고 상투적인 뮤지컬 스코어를 기대했을 뿐이던 우리는 그만, 제대로 어퍼컷을 맞았다. 영화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였고, 로맨스는 지극히 뮤지컬다웠으며, 시종 우리는 웃었고 나는 눈물 흘렸다. 

원테이크로 찍힌 오프닝은 이미 유명하다. LA의 싱싱한 오렌지처럼, 가사와 안무 곳곳에<사운드 오브 뮤직 Sound of Music>이나 <록쉬포트의 젊은 여인들 The Young Girls in Rochefort> 같은 고전 뮤지컬을 향한 오마쥬가 마치 달콤한 과즙 터지듯 여기 저기에서 터진다. 꽉 막힌 도로 위에 갇혀있던 미아 (Emma Stone)와 세바스챤 (Ryan Gosling)의 모습은 예술가로서의 경력에 있어서 앞으로나 뒤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의 현실과 같았다. 미아는 오디션을 연습하느라 앞으로 가지 못하는데, 그러한 그녀를 빵~! 하는 경적으로 빨리 가라고 부추기는 것은 세바스챤이다. 그녀를 일깨우는 이 은유는 영화에서 계속 반복된다. 데이트 하기 전 미아를 데리러 오는 세바스챤은 언제나 경적을 울리며, 포기하려는 미아를 설득하기 위해 무작정 찾아간 그녀의 고향 도서관 앞에서도 그는 경적을 울린다. 반면에, 꿈을 좇느라 현실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세바스챤을 정착시켜서 결국 그의 음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은 미아였다. 두 사람은 모든 예술가들의 고민을 양면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동전과 같다.  

그래서 이 영화의 사랑이 unhappy ending 이어도 내게는 그리 상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어차피 사랑하도록 예정되어 있었고, 또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 아니, 이해된다. (에필로그는 어쩌면 그렇게 달콤하도록 카사블랑카나 쉘부르의 우산과 같은 고전 영화들을 기대면서, 뮤지컬 특유의 낙관적인 상상을 잃지 않았던지!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통속적이고, 이루어지지 않아도 통속적이다! 그러나 후자가 예술가들에게는 훨씬 bittersweet 한 현실 아닌가.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래서 내게는 이 영화가 사랑이야기라기보다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모든 사랑 받아야만 하고 사랑 받을 자격이 있으며 사랑스러운 예술가들, 바로 그 Someone in the Crowd. 

이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을 지도 모르는, 바로 그 한 사람. 그러나 가사는 곧 “나는 대중 가운데 평범한 한 명일 뿐”이라는 독백으로 바뀌었고, 여주인공은 헐리웃 배우들의 (그것도, 그들이 관객으로 그려진) 벽화를 지나 LA 거리를 우울하게 배회하였다. 한 편, 남자주인공은 방금 막 자본에게 외면당했고, 레스토랑을 가득 채운 대중들 중 아무도 그의 연주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가 단 한 명인 그녀에게 발견된 순간이기도 했다. 후에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사랑의 듀엣, City of Stars는 별 같은 도시 LA를 가리키기도 하며 동시에 “스타들의 도시”를 뜻하기도 한다. 너무 많고 멀리 있는 그 별들. 가사는 이어진다, Are you shinning just for me? 당신은 나만을 위하여 빛나줄까? 여인은 노래한다, 네 – 우리가 찾고있는 것은 결국 누군가로부터 오는 사랑이에요. yes, we are looking for is love from someone else. 모든 예술가들에게는 사람들의 사랑이 꼭 필요하다. 관심 어린 시선과 너는 괜찮다는 목소리가 절실하다. 이재철 목사님께서는 “아침에 떠오르는 저 태양이 당신을 위해 떠오른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다”고도 말씀하셨었다. 무엇이, 어떠한 확신이, 미아나 세바스챤과 같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현실을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나는 단 한 명의 예술가를 위해서 박수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한 그 날 저녁 뉴스에, 아직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숫자를 보험금의 가치로 환산하여 방송하는 나라에 살고 있을수록 더욱, 불황의 시기일수록 더더욱, 나의 손이 부서지도록 그들을 위하여 박수 칠 것이다.  

PS: 영화 제목 Lalaland는 LA의 애칭이자,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성 없는 세계를 비꼬는 말이기도 하다. 예술과 현실. 시종 이 영화가 환상과 현실 사이를 원테이크로 넘나들고 진짜 대스타인 존 레전드가 등장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뮤지컬의 환상적인 충만함과 현실의 잔혹한 생존경쟁을 따로 떨어뜨려 받아들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감독의 연출이 빛난다. 참으로 Damien Chazelle의 연출은, 마치 뮤지컬처럼, 말하고 싶은 것을 향하여 자유롭게 날아간다. 사실, 뮤지컬 매니아였던 그는 이 영화를 첫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유행이 아니고 구시대적인 취향이라는 제작사의 반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화 위플래쉬로 전향했었다고 한다. 만약 그 영화가 흥행하지 않았다면 La La Land는 우리에게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헐리웃, LA에서 예술이 나온다면, 이와 같을 것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씀 하셨듯이 모든 덕질은 보상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