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리라 7. 느헤미야 6장

2018. 5. 7. 18:35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마리아 푸조의 소설 <대부>를 원작으로 한, 프랜시스 포 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 I>에는 뉴욕의 5대 마피아 패밀리의 수장들이 모여 팽팽한 긴장감으로 평화 협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비토 콜레오네는 그의 아들 마이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배후가 바지니였을 줄 몰랐다.” 그리고, 치명적인 조언을 덧붙입니다. “내가 죽은 뒤 너에게 처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배신자다.” 


정말로, 마이클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잔인한 숙청의 기회로 삼아 자기의 권력을 공고히 다지게 됩니다. 살인을 했느냐는 아내의 질문에 그는“아니”라고 답하지만, 천천히 닫혀지는 문 틈으로 마이클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과 복잡한 표정은 영화사에서 유명한 엔딩입니다.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성전 공사의 막바지에서 느혜미야에게 닥쳤던 세 번째 시험도 그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류의 시험들에 대하여, 느헤미야는 점점 더 미묘해지고 내밀해지는 순서로 기술했습니다. 그 첫번 째는 산발랏과 게셈의 회담 요청이었습니다. 네 번이나 거듭 된 제안에도 느헤미야는 일해야 하므로 시간이 없다고 답합니다. 결국 다섯 번째에는 열린 봉투에 느헤미야를 음해하는 내용을 담아 보냈지만, 느헤미야는 “사실이 아니라”고 짧게 답한 후, 하나님께 기도하며 다시 일에 몰두합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좀 더 내밀했습니다. 바로 가까운 내부자가, 그것도 신뢰하는 종교인이 느헤미야를 위해주는 척 하면서 지성소에 숨으라고 유혹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목숨을 부지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곧 이 모든 일이 돈 때문에 벌어진 거짓 예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때에도 느헤미야는 기도를 드릴 뿐 다른 대책이나 복수 없이 일에만 열중합니다. 


세 번째는 좀 더 미묘하고 지속적이었습니다. 도비야라는 유력자가 유다의 귀족들과 계속 내통하면서 느헤미야의 환심을 사려 했습니다. 더 나아가 서로 직접 소통을 나누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목적이 자신을 위협하여 공사에 지장을 주는 데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성벽이 완성되었다는 기록 이후에도 적어두었을 만큼, 도비야의 시험은 은밀하고도 끈질겼던 것 같습니다. 


지적이고 교양 넘치지만 그 안에 날카로운 거짓이 들어있는 대화도 있습니다. 마치 영화 대부에서 아무도 직설하지 않았지만 바지니 패밀리가 배후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처럼, 혹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가 바로 배신자였던 것처럼, 화기애애한 대화와 다정한 표정이 진실의 전부가 아닌 경우는 많습니다.   


느헤미야가 그 모든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던 까닭은, 그가 전심으로 성벽을 세우는 한 길에만 열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정한조 목사님께서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혀를 낼름거리며 주변 상황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있는 뱀처럼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분별하되, 다른 길에 한 눈 팔지 않고 소식을 전하는 비둘기 - 전서구 - 처럼 순전하게 한 길만 기억하여 가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예수께서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 물러갔던 사탄은 이제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선지자여, 너 자신부터 먼저 구원하라 -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나 예수님은 듣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느헤미야가 잃어버린 성벽을 되찾는데만 열중하여 어떤 소리에도 흔들림 없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잃어버린 우리들을 되찾는 일만 기억하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49:15-16)"  


내 눈에도 보이지 않는 나의 성벽이, 내 주의 눈 앞에는 있다니요. 나는 무너진 성벽 같을지라도, 나의 주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구원하시는 일에 결코 흔들림 없으실 것입니다. 저 역시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