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 하여 심으리라 9. 느헤미야 9장

2018. 5. 21. 15:44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는 부모의 별거로 가코시마현과 후쿠오카현에 떨어져 살게 된 코이치와 류노스케 형제가 나옵니다. 형 코이치는 활화산이 있는 마을에 살면서, 화산이 폭발해 외갓집이 불타면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함께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개통한 신칸센 열차가 고속으로 교차하는 곳에서 소원을 외치면 엄청난 에너지의 파장이 그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말을 믿은 그는 자신의 소원, “화산 폭발”을 빌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그 장소로 여행을 떠납니다. 동생 류노스케도 각각의 소원을 품은 친구들을 데리고 합류합니다. 드디어 그 곳에서 열차가 최고 속도로 교차하여 지나갈 때, 아이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외칩니다: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요! 죽은 강아지를 살려주세요! 


죽은 강아지를 살려주세요... 이 초혼 -실제로는 아무 능력 없던 그 외침-을 듣는 관객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힘겹게 이곳까지 왔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무 일 일어나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지켜볼 뿐. 그렇게 기적을 위한 ‘의식’을 마친 꼬마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눈에 띄는 결과는 없어도 아이들은 어른의 세계로 한 뼘 자랐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 


느헤미야 9장에는 기도문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제 눈에는 이 기도문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국가의 ‘의식’에 기도문을 체택한 것도 비범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가 축약되어 있을 뿐 기도인데도 불구하고 간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32절의 극히 소심해 보이는 요청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열왕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 당한바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기도문의 끝도 참 이상했습니다. “우리 죄로 인하여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다 인을 치나이다.” 불의한 현실과 맞서 궐기하자는 것도 아니고 민족 중흥의 역사를 다시 일으키자는 것도 아니며, 그저 “곤란이 심합니다.” 그리고 싸인, 끝! 


토요일 저녁까지 기도문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바쁘신 이광희 목사님께 여쭤볼 수 밖에 없었고,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습니다. (훌륭한 답변을 그것도 전광석화처럼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목사님!) 

“[32절 이후]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할 일을 지정하여 요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심판은 자신들의 죄에 비하면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33절). 즉 자신들에게 이 모든 고통을 내리신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한 것이다.[각주:1]  

즉, 그들은 고통스러울지라도 현실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주께서 저희들에게 이렇게 행하신 일은 옳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깨뜨렸던 언약을 이제는 다시 지키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다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정말 수줍게 드리고 있습니다, “저희를 작게 여기지 말아주세요.” 마치 배신했던 아내가 남편에게 돌아오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처럼, “아직 나에게 주실 사랑이 남아있나요?”   


남편의 대답은 아내가 상상할 수 있는 차원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260km/h의 신칸센 열차가 서로 엇갈리며 생기는 굉음처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으셨을 때, 사실 우리들의 남편은 우리가 그에게 끼친 전 우주적, 전 역사적인 상처를 자신이 홀로 껴안으시고, 다시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언약을 그의 피로 갱신하셨습니다. 


“이 천 년 전 팔레스타인 지방의 한 젊은이가 공권력에 의해 잔인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이 21세기를 사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스스로 집행하신 속죄의 의식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네, 그래서 이 믿음은 기적입니다. 영화 속 꼬마들의 의식으로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영화를 만든 감독이 관객들에게 기적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 만큼은 영화를 보는 내내 확연히 느낄 수 있듯이, 저도 처음에는 “이 기적이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램으로 이 신앙을 시작했고, 조금씩 조금씩 그 사랑이 현실에서 경험되어지면서 믿음도 자라났으며, 어떤 순간을 지나면서부터는 그 믿음이 나의 현실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분은 제가 이렇게 변화하리란 기적을 바라여 그 의식을 집행하셨을 것입니다. 정말 무능하고 작은 저이지만, 그 분의 믿음을 이루어드리고 싶습니다. 기적은 진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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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 그들은 이 재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구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 고통을 작게 여기시지 말도록 간청하였다(32절). 이것은 이 모든 기도 가운데서 유일한 간청이다. 이 고통은 전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이었다. 즉 열왕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열조와 모든 백성에게 닥쳐온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 죄를 함께 지었기 때문에(34절) 심판도 함께 당하는 것이다. 이 고통은 오래 지속되었다. 앗수르 열왕의 때로부터 오늘날까지(32절). 북왕국 열 지파들은 앗수르에게 포로가 되었다. "주여 이 모든 것을 돌아볼 가치도 없는 작은 것으로, 구속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여기지 마옵소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이 하실 일을 지정하여 요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맡겼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자신들의 죄에 비하면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였다(33절). 즉 자신들에게 이 모든 고통을 내리신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한 것이다. (6) 모든 일에 대한 결론과 결과가 여기에 나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소사실을 이렇게 길게 나열한 후 마침내 다음과 같은 결심을 하였다.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분명한 약속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곁을 자주 떠나갔지만 이제는 옛날의 어떤 때보다도 굳게 자신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기 원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죄 때문에 너무 많이 매를 맞았으므로 이제는 결연히 죄에 대항할 결심을 하고자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어깨를 움츠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중에서 몇 사람을 그 집회의 대표로 뽑아 서명하고 인을 치게 하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