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리라 10. 느헤미야 10~11장

2018. 6. 4. 09:37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아서 힐러 Arthur Hiller 감독이 연출한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각색한 영화입니다. 원작에서는 둘시네아라는 여인이 돈키호테의 환상 속에 존재할 뿐이지만, 뮤지컬에서는 “알돈자”라는 이름의, 몸 팔고 품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비천한 여인을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로 착각한다고 설정했습니다. 돈키호테는 알돈자를 ‘아름답고 귀하고 성스러운 숙녀’라고 부르며 목숨 바쳐 지킬 만큼 고귀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그녀는 돈키호테가 미친 늙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세상에서 받지 못했던 존경과 예의를 거듭 경험하면서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진정한 둘시네아 - 강하고 존귀한 여인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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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0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이어진 11장에는 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실제 남아 지켜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11:1)” 여기에서 제 눈을 사로잡는 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입니다. 

제비뽑기를 해야 했을 만큼, 예루살렘성은 사람들이 기피하던 곳이었습니다. 부동산으로 치면 절대 투자해서는 안 되는 지역 - 주거 인프라도 없고 다른 대적들의 공격목표가 되는데다 이미 주변 다른 성에 정착했었다면 이사비용도 들어갈 곳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굳이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이라고 호칭할 때에는 어떠한 자긍심이 느껴집니다. 

세상은 알 지 못하고 가치롭게 보아주지도 않지만, 제게도 이렇게 거룩하고 아름답고 고귀하고 성스러운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수가 모이지는 않지만 중보기도모임이 그러하고 구역장님들과의 모임이 그러하며 구역모임이 그러합니다. 세상의 멘사나 알파파클럽이 - 물론 이들이 저를 끼워주지도 않겠지만^^ - 부럽지 않습니다. 느디님 사람들처럼, 저는 하나님 전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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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여 느헤미야는 사람들의 이름을 이어갑니다. 또 제 눈을 사로잡는 구절은 6절입니다. “예루살렘에 거한 베레스 자손의 도합이 사백 육십 팔명이니 다 용사이었느니라.왜 다윗의 자손이라 하지 않고 근친상간의 죄악에서 태어난, 그것도 장남이 아니라 차남인 베레스의 자손이라고 부를까요? 베레스라는 이름의 뜻은 “터치고 나오다" 즉, 그의 후손을 통하여 다윗왕이 태어나고 결국 메시야가 오셨다는 사실에서 그것은, 윤리나 도덕법도 막지 못하여 꿰뚫고 나오셨던, 도저히 억제하지 못하고 우리를 향하여 구원의 손길을 내뻗으셨던 우리 주님의 사랑을 상기시킵니다.[각주:1]

그리고 용사라니요..! 그들은 영화 <300>에 나오는, 울퉁불퉁한 근육남들이 아니었습니다. 식민지이자 힘없는 속국의 한낮 필부들, 반세겔의 세금조차 무거워 삼분의 일로 깎아주어야 했던 연약한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느헤미야의 눈에는 그들이 ‘용사’로 보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베레스의 자손이라 부르며 용사라 호칭할 때, 이것은 역설의 역설입니다. 느헤미야가 이 명부를 기록했을 때, 그는 복음의 역설을 상기시켰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태생의 연약한 민족이지만,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 안에서 존귀한 용사들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알돈자처럼 비천하지만, 수많은 돈키호테들이 저를 둘시네아라고 속아주셨습니다. 저를 받아주신 부모님도, 저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도, 저를 사랑해준 남편도, 그리고 누구보다도 우리 주님 - 영혼 깊이 더러운 저를 아름답고 고귀한 숙녀라고 불러주신, 결국 문자 그대로 목숨을 바쳐 지켜주신 그 분의 미친 사랑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참으로 비천한 나의 현실에, 그리고 세파에 치여 풀죽은 나의 사람들에게, 십자가 위의 주께서 이렇게 크게 외쳐 불러 주십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사사기 6장12절)”   

http://100church.org/home/board.php?board=cast&category=4

  1. 베레즈의 의미에 대해서는 Tim Keller 목사님의 설교 "Tamar" (in the series of Jesus's Mothers)을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