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 하여 심으리라 11. 느헤미야 12~13장

2018. 6. 11. 19:31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안드레이 아르세니예비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15세기 러시아 이콘의 거장,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일생을 소재로 만든 픽션입니다. 영화 말미에 이르면, 루블료프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예술가라는 무력감과 죄책감 때문에 붓을 꺾고 스스로 금언의 형벌을 내립니다. 침묵과 함께 그는 화면에서 잠시 물러나고, 카메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성주는 자신의 이름을 높일 종과 종탑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마을은 페스트로 거의 전멸되었고, 종을 만드는 기술자의 아들 -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아사 직전이었던 소년은, 폐허 위를 수색하는 군인들에게 필사적으로 외칩니다, “내가 종을 만들 줄 알아요! 아버지가 내게 다 가르쳐줬어요!” 


당시 종을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운 기술에 속했고 여러 사람들의 협업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소년은 절대 못만들거라는 불신과 싸우며 제작 과정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는 나이 많고 자신을 업신여기는 일꾼들을 다루느라 애를 많이 먹었고, 적당한 재료를 찾느라 꽤 긴 시간을 소요하여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빚었습니다. 식음을 잊은채 일에 매달려 과정마다 깐깐하게 구는 소년을 사람들은 몹시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가장 기본이 되는 흙을 구하는 일에도 전혀 타협이 없어서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소년이 꼭 맞는 흙을 찾았을 때 비에 흠뻑 젖은 것도 아랑곳 않고 흙탕물 속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루블료프는 카메라처럼 잠잠히 종 만드는 소년의 모습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타종식을 올리는 날이 왔습니다. 잔치는 첫 번째 종소리로 시작될 예정입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귀인들과 사람들이 종탑 앞에 모여들었고, 마을은 온통 큰 잔치 직전의 설레임이 가득한데, 정작 소년은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합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립니다, “종은 안 울릴거야. 저 풋내기가 뭘 하겠어.” 그런데 순간, 소년의 눈 앞에 환상처럼 당나귀를 탄 귀부인 - 마치 천사같은 어떤 여인이 꼬마 시종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지나갑니다. 잠시 어리둥절한 사이,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온 천지에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기쁨에 들뜬 잔치가 시작되었고, 조금 전까지 비웃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까맣게 잊은 듯 서로를 축하하며 즐거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축제 분위기인데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루블료프는 한 구석에서 발작하듯 떨고있는 그를 찾아냈습니다. 황급히 일으키는 손길에 아이는 오열하며 부르짖습니다, “그 빌어먹을 늙은이, 그 빌어먹을 늙은이는 내게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루블료프는 흐느끼는 소년을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모두 기뻐하는데 너는 울고있구나." 그렇게 3년 동안 지켜온 묵언수행을 깨뜨리며 그가 말을 잇습니다, “나와 함께 모스크바로 가자. 거기서 나는 이콘을 그리고 너는 종을 만들자.”  


*** 

느헤미야 12장에도 큰 잔치가 나옵니다. 바야흐로 성벽 낙성식이었습니다. 종교인을 앞세워 성벽 위를 행진하여 성전 앞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소리로 찬양했다고 합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 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느헤미야 12장 43절)” 


그렇다면 성벽 완공의 1등 공신이었던 느헤미야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는 행렬 맨 끝을 따라갑니다. (38절) 안 좋은 일에는 다른 누구보다도 앞장서고, 좋은 일에는 다른 사람을 앞세워 기꺼이 뒤서는 사람이 좋은 지도자라고 정한조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우리 주님도 그러하셨습니다. 죽음의 쓴 잔은 자신이 마시고 제게는 성찬의 포도주처럼 달콤한, 축제 같은 삶을 돌려 주셨습니다. 


종 만드는 소년이 축제를 즐기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켰던 까닭은, 모든 예술가들의 고뇌이기도 합니다: 분명 “그 빌어먹을 늙은이” 하나님께서 종소리도 들려주셨고 그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게도 하셨는데 만들어낼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내팽겨쳐진 세상에서 예술가들이 목숨을 걸지 않고는 삼류라는 비웃음에 종소리를 울려 줄 수 없습니다. 아니, 종은 커녕 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설령 목숨을 깎아서 종을 울린다 해도, 팽팽한 긴장과 압력 뒤에 오는 발작 같은 허무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나 비록 모르고 있었지만, 소년은 아빠를 닮았습니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안드레이 루블료프라는 또 다른 아버지와 함께 모스크바로 갈 것입니다. 이제 느헤미야는 기꺼이 축제 맨 뒤에 서서 백성들을 지켜보며 함께 잠잠히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팽팽한 긴장과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여 이루어낸 성취였지만, 소년과는 달리 그가 발작하지 않았던 까닭은, 아마도 모든 것이 하늘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신 일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어쩌면 이 성벽과 기쁨이 영원하지 않으며, 앞으로 올  궁극적인 축제의 일별일 뿐임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것이12장 뒤에 13장, 즉 실패와 타락의 기록을 배치한 까닭일 것입니다. 


결국, 진짜 잔치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시작될 것입니다. 그 날, 주께서 다시 오실 날, 성도들의 눈에서 눈물을 다 닦아주시고 온전한 공의를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날이 오면,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작은 불의와 고통도, 온 세상에 편만한 가난과 불화와 어그러짐도, 그날이 오면 모두 꿈처럼 사라질 것이며, 비로소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던 그 완벽한 종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 전까지 세상의 모든 종소리가 아무리 그 종이 크고 위대하다 한들 한낱 MIDI 벨소리를 낼지라도, 우리는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