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 하여 심으리라 12. 느헤미야 13장

2018. 6. 19. 19:31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1989년, 만화 <배트맨>이 팀 버튼 감독에 의해 처음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B급 문화의 아우라와 “검은” 영웅이라는 이유로 흑인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배트맨의 검은 가면 뒤에는 성 같은 저택에 살며 집사의 시중을 받는, 백인 그것도 주류인 귀족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선과 악, 흑인과 백인, 상류문화와 하류문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리면서 전형을 깨뜨립니다. 주인공인 배트맨은 검은 가면의 무표정이지만 악당인 조커는 흰색의 웃는 얼굴로 고착되어 있습니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성장한 데에는 조커가 원인을 제공했고, 조커가 싸이코 악당이 된 것 역시 배트맨이 원인이었습니다. 즉 선과 악이 서로의 뿌리가 되어준 것입니다. 

팀 버튼을 향한 오마쥬를 바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에서도 고담시는 여전히 선과 악이 혼재하며 부패한 경찰, 악당들과 결탁된 관료들로 가득합니다. 배트맨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언젠가 배트맨이 필요 없는 공의로운 세상이 오면 청혼하겠다고 고백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를 선택하며 이런 말을 남깁니다, “그런 세상은 절대로 오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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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가 고군분투하여 건설한 예루살렘 성과 시스템은 그의 부재 1년 만에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상류층은 이스라엘의 대적들과 결탁되어 있었고, 이방의 유력한 가문과 결혼으로 세를 확장했습니다. 백성들이 생계를 위해 안식일에 장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2세대 어린 아이들은 신앙의 언어를 알지 못한 채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부지런히 그 모든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았습니다. 당시의 기득권층으로부터 권력과 돈을 재분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겠으나 그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칼 같은 단호함으로 해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틈은 13장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기도입니다. 그는 절망했었을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며 기도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한조 목사님으로부터 느헤미야를 배우기 전까지 저는 그 기도가 본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의 기도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저려옵니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13장 14절)” 

결국, 느헤미야가 꿈꾸었던 신정국가 이스라엘은 유토피아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지금 하나님께 제발 성전과 성벽의 복구를 없었던 것처럼 돌리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그가 꿈꾸었던 공동체와 공의를 "도말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느헤미야가 살아있는 동안은 잠시 가능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을, 다른 어떤 뛰어난 정치력과 행정력을 동원하며 탄탄한 시스템을 만든다 해도 마침내는 불가능한 일이란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는 "메시야" - 또 다른 히어로 - 가 절실합니다.  

배트맨 역시 자기가 꿈꾸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그 싸움이 지겹도록 끝없다는 사실 - 악은 없애고 없애도 계속 발생할 것이며 자신도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영화 속 고담시의 배경이 언제나 어두운 밤인 까닭입니다. 동시에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까닭이기도 했습니다.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선이 언제나 악을 이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 자신이 먼저 악과 손잡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희망을 걸었던 정치인도 나처럼 나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젊음을 바쳤던 일도, 평생을 바친 가족도, 그리고 믿었던 교회까지도... 모든 것이 언제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세상은 죽음에 굴복되어 있으며, 아무도 시간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한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궁극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한 인물, 아마도 우리들의 궁극적인 배트맨이 되실 그 분은, 이 악한 도시와 나의 악함으로부터 나를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영원히 못박아 버리셨습니다. 그 분을 바라보면서 저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실망을 버리고, 주신 일과 사람들과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어진 하루 동안 그 분의 나라를 기대하며 일하는 축복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처럼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 (시9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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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영화 <배트맨>에서 미술전공자로서 재밌었던 장면은 역시 잭 니콜슨이 분한 조커가 락음악에 맞춰 상류문화의 상징인 고전 미술품들을 훼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만은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부하를 저지하며 "나는 이건 좋아해" 라고 말하지요) 베이컨의 그림을 직접 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그의 작품은 마치 뼈가 부러지는 순간의 통증을 캔버스에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조커는 (즉 팀 버튼 감독은) 인간의 현존과 권위를 고통스럽게 비틀어 그린 베이컨의 작품이라면 굳이 자신의 손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