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내 곁에 있어줘 Be With Me - 에릭 쿠 Eric Khoo

2016. 9. 8. 09:50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1) 영화 "내 곁에 있어줘"는 싱가폴의 감독 에릭쿠가 만든 사랑에 대한 영화입니다. 세 개의 픽션과 한 개의 논픽션을 교차하여 만든 재미있는 구성이지요. 아래 네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실화일까요? 


1. 한 수위가 그가 일하던 고급 아파트에 사는 상류층 여인을 짝사랑합니다해고되던 날 어렵게 쓴 연애편지를 전달하러 가지만, 과연 그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2. 재키는 사만사와 채팅으로 만났어요. 둘은 친구 이상의 동성애적인 사랑을 품게 되었지요. 그러나 사만사가 남자친구를 사귀고 재키와의 연락을 두절하자 재키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3. 윌리엄은 사회복지사 입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맛있게 요리한 음식들을 그의 어머니의 밥그릇에 담아줍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어색한 미소만을 짓고 있을 뿐이지요.

 

4. 테레사 할머니는 이중의 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청력을 잃은 뒤 10살 무렵 시력도 잃었어요. 영화가 진행될수록 감독은 그녀의 장애를 떠안으며 그녀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점점 침묵해갑니다 , 오디오는 점점 조용해지고, 검은 바탕에 자막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지요. 테레사는 낡은 타자기의 타이핑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깊이와 너비는 얼마 만큼일까? 나는 마치 아주 조용하고 어두운 감옥 안에 갇힌 것 같다.”

 

(2) 다른 세개의 픽션들도 무척 재미있고 마음을 움직이지만, 저는 여기에 테레사 할머니의 실화만을 옮겨 볼 생각이에요. 다른 이야기들의 감흥까지 옮기자면 오늘 밤의 시간으로는 부족할 것 같기 때문이지요. 물론 이 네 개의 이야기들은 영화 마지막에 가서 마치 마법처럼 한 이야기로 묶입니다.

 

어린 테레사가 볼수도 들을수도 없게 되었을때,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바깥의 세상이었어요맹인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교육을 받을수있다고 테레사를 설득했다고해요. 그리고 영국과 미국에서 테레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어요. 테레사는 결국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그 때엔 오직 광둥어만을 알고있었다고 합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데 외국어를 습득하다니놀랍지요.

 

처음 그녀가 화면에 등장했을때, 저는 그녀의 영어발음이 너무 거칠어서 놀랐었어요. 그녀는마치 뱉듯이 소리를 지릅니다. 하지만 곧 그 까닭을 알수 있었어요. 그녀가 처음 영어를 배울때, 그녀는 이미 시각장애인이요 청각장애인이었지요. 그녀가 발음하는 영어는 마치 기계가 내는 소리처럼 철저하게 공식에 의한 것이었어요. 그녀는 한 번도 남의 목소리나 자신의 목소리로 영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지요. “세상에 정말 불가능한 일은 사실 별로 없어요.” 영화 속에서 그녀가 덧붙인 말이에요.

 

영화의 한 장면: 그녀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후 불을 켜고 잠시 기다렸다가 숟가락으로 기름을 한 번 휘저어봅니다 알맞은 온도가 된 느낌이면 달걀 두개를 숟가락으로 톡톡 쳐서 깨뜨립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얼마나 익었는지 건드려 보면서 소금을 넣습니다…. (이하생략)

 

감독은 그녀가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을 편집 없이 롱테이크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데요, 그것은두 가지 면에서 감동을 줍니다: 하나는 그녀가 식사 준비에 보이는 경건하고 성실한 태도이지요. 그녀는 시종 꼿꼿이 서서 전혀 서두름이나 지루함없이 오직 촉각 하나만을 의지하여 자신의 식사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먹는다는 행위는 얼마나 성스러운 일인지요

그리고 두 번째의 감동은 그녀가 겪어야만하는 삶의 두께에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달걀후라이 하나조차도 긴장해야만하는 일인 것이지요. 보통의 인간에게는 하찮고 단번에 해치울 수 있는 생활의 과정과정이 그녀에게는 여러 겹의 삶의 결로 등장하고, 그 한 겹 한 겹이 꽤 두꺼운 벽이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묵묵히 그 벽을 파고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극의 배우가 되고싶던 그녀의 꿈을 들어주지 않으신 대신, 그녀에게 더욱 행복한 삶을 주신 것 같아요. 그녀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많이 겪었다고 해요. 유학을 하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모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 것 외 데이트도 해보았다고 해요. 데이트에 대해선 뒤에서 다시 옮겨 드릴게요. 지금은 영화의 다른 이야기들이 어떻게 테레사 할머니의 실제 사랑과 얽히게 되는 지 영화의 시놉시스를 좀 더 따라가 볼게요.  

 

(3) 윌리엄은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저녁 8시마다 테레사할머니의 집을 찾아가 그녀가 일주일치장을 보는 일을 도와줍니다. 진열대에 놓인 음식을 집어다 테레사의 손에 대어주고 가격을 손바닥에 써주면 테레사가 너무 비싸요.” 혹은 좋아요 괜찮네요.” 등 코멘트를 해주는식 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테레사가 윌리엄에게 아버지는 안녕하시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윌리엄에게 아버지를 좀 더 자주 찾아뵈라고 마치 어머니 같은 충고를 줍니다.

 

그 다음 날 윌리엄은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아버지는 가게를 감싼 굳은 철장을 거두지않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요리를 먹으면서 윌리엄은 말합니다, “아버지, 이제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셔요. 아버지 본인의 건강도 생각하셔야지요.”

 

이 때 관객의 입장이었던 저는 이 대사에 얼마나 놀랐는지요. 아버지가 언제나 반찬을 담아 그 앞에 놓아주던 나이 든 부인의 모습은 감독이 관객을 배려하여 (혹은 우리의 눈을 덮어두려) 만든 아버지 마음 속 그리움의 영상이었던 것이었어요. 말없이 자리를 뜨는 아버지에게 윌리엄이 책 한 권을 드렸어요, “저는 테레사 할머니의 글을 광둥어로 번역하고 있어요. 아버지도 한 번 읽어보실래요?”

그날 저녁, 아버지가 만든 음식을 테레사 할머니에게 나눠준 윌리엄은 아버지에게 테레사 할머니가 아버지의 요리를 아주 좋아했다고 전해요. 테레사 할머니의 글에 큰 감동을 받은 아버지는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테레사 할머니를 위하여 요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감독은 그가 말없이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는 과정을 조용하고 따뜻한카메라의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죽은 아내를 위해 만들던 요리에서 테레사 할머니를 위한 봉사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아버지는 점점 삶의 의욕을 찾기 시작해요.

 

(4) 영화의 제목 <내 곁에 있어줘>는 이러한 아버지의 에피소드에 기반한 것 같아요. 아버지가 비어있는 아내의 자리에 음식을 놓아주면서 그 마음의 고통을 달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신을 어떻게 나의 실제에서 느끼며, 심지어 그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지” 생각에 잠겼어. 끝없는 기도와 성경의 묵상이 정답이 아님을 알고 있어요. 사실, 크리스챤들도 대부분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을 거에요. 영혼 깊은 곳, 한 없는 그리움에 마주 손잡아 주시는 절대자의 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내민 손보다 그 분의 손이 훨씬 더 긴 여행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왔을 지도 모르겠어요. 테레사 할머니가 누군가를 찾고 싶을 때, 그녀가 알 수 없는 허공을 향하여 손을 내밀 수 밖에 없겠으나, 다른 사람이 다가가서 그 손을 붙들어 주면 비로소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듯이.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테레사 할머니처럼 그렇게 눈멀고 귀먹었다고 가르쳐주지요. 분명 우리의 일부분은 죽어있고, 우리 모두는 점점 죽어가고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노화와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피할 수 있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아무리 세상 모든 것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보이시고, 우리 귀에 “사랑한다” 외치신들 여전히 어둡고 고요한 자아의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우리들은 그 분을 알 수 있는 다른 차원의 통로로부터 차단되어 있는 것 같아요.

 

(5) 그러나 테레사 할머니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1968, 테레사는 결혼할 뻔했지요. 불행하게도 그해 크리스마스에 그는 코암으로 사망했어요. 그때부터 테레사할머니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그를 위한 선물을 준비합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독신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에요.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합니다.

 

(6) 윌리엄은 자살에 실패한 재키의 병원을 찾아가느라 테레사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어요. 그래서 대신 아버지에게 할머니를 찾아가줄 것을 부탁했지요. 아버지는 갓 만든 따뜻한 음식을 들고 약속한 8시에 테레사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8 5분 전부터 테레사 할머니는 문 앞에 앉아서 약속한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어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그렇게 하는 수 외엔 방법이 없겠지요.) 아버지 역시 음식을 들고 문 밖에 예의 바르게 서계십니다.

 

8, 점자 시계에 손을 대어 시간을 확인한 테레사 할머니가 문을 열면서 반갑게 외칩니다, “맛있는 냄새! 오늘은 어떤 요리지요?” 그리고 다정하게 손을 맞잡았다가 깜짝 놀라면서 손을 뗍니다. 하지만 곧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혹시 윌리엄의 아버지세요?” 그렇다고 손을 대어 표시하는 윌리엄의 아버지를 테레사 할머니는 환대합니다, “어서 들어오셔요!”

테레사 할머니가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은 노인이 아내를 잃던 병원의 모습과 섞입니다. 창백한 병원의 벽을 배경으로 카메라는 아버지의 눈물이 아내의 눈물과 섞이고, 검버섯이 핀 늙은 손이 주름진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는 모습을 묵묵히 담아냅니다.

 

다시 현실로. 아버지는 자신이 만들어온 음식을 드시는 테레사 할머니 곁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비록 테레사 할머니가 듣지 못하시지만, 그는 울음을 안으로 삭혀 소리 없이 흐느끼실 뿐입니다. 이때 테레사 할머니는 그가 울고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울지말라면서 그를 끌어안아줍니다. 두 노인의 주름진 손이 포개어질 때, 즉 모든 어긋난 사랑이 눈물을 글썽이던 그 순간, 저는 인간의 육체의 젊음은 그저 껍데기일 뿐이며, 영혼의 본질은 결코 멸망치 않음을 믿었어요. 그렇게, 영화의 마지막은 테레사 할머니의 타이핑으로 끝납니다. “내 곁에 있어주셔요, 나의 사랑하는 사람. 그러면 내게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