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밀정 - 김지운 감독

2016. 9. 20. 00:35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지대넓얕> 113~114회에서는 병법에 등장하는 밀정의 네 종류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간단히 옮기자면 아래와 같다.  


1. 향간 - 적진의 정보를 얻기 위하여 그 지역에서 포섭한 사람.  

2. 생간 - 정보를 캐내기 위하여 적진으로 보낸 밀정. 살아 돌아와야만 한다.  

3. 사간 - 잘못된 정보를 갖고 적진에서 죽어 교란시키는 사람. 이 사람은 돌아오면 안 되고, 죽어야 한다. 밀정 본인이 자신의 역할을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즉, 아군에게 배신당한 것을 모르고 자신이 의도적으로 사지에 보내졌다는 것도 모르는 채, 잘못 알고 있는 정보를 흘리며 죽을 수 있다. 

4. 반간 - 이중간첩. 그 존재의 진의 여부는 아군에서도 극히 일부분만 확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이다. 


성경에는 네 가지 종류의 스파이들이 모두 등장한다. 첫 번째로 성경에 등장하는 향간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라합일 것이다. 여리고인이었던 그녀는 자발적으로 모세가 보낸 밀정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데, 유대인들이 여리고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고, 그들을 숨겨주기까지 했으며, 그 대가로 자신과 그 가족들의 생명을 요구했다. 


두 번째, 성경에는 많은 생간들이 등장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가나안으로 보낸 정탐꾼들일 것이다. 모세가 보낸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이 가나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과의 전쟁을 주장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 명의 정보를 편들어 주셨다. 


세 번째, 가장 비극적인 형태의 스파이인 사간의 적확한 예는 성경에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아주 비슷한 예로,  다윗왕의 친구 우리야가 잘못된 정보를 지닌 채 사지로 보내져 죽임 당한다. 다윗 왕은 친구인 우리야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가 아이를 갖게 되어 우리야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우리야의 손에 편지를 들려 군대장관 요압에게 보내는데, 그 편지에는 우리야를 적진 한가운데 두고 퇴각하여 반드시 죽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성경은 그 이후의 일을 이렇게 묘사한다,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이르되 "(...)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개역개정 사무엘하 11장 20~25절)

 

네 번째, 반간은 영화 “밀정”의 주제이기도 하고, 성경에서도 매우 흥미롭게 등장하는 예가 있다. 다윗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에 밀려 다윗성을 버려두고 도망갈 때, 그의 심복 중 한 사람 후새가 성에 남아 압살롬의 편인 척 다윗의 정보를 주는 사람이 되지만, 실은 다윗이 심어 둔 이중스파이였다. 그는 압살롬의 작전회의를 듣고 그 내용을 아군에게 보낼 뿐 아니라 압살롬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한다. 당시 압살롬 측의 브레인은 아히도벨이었는데 그가 다윗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작전 - 소수정예의 군인들을 보내어 도망가는 중인 다윗 편에 잠입해 들어가 다윗만 죽이자는 계획을 내어놓았을 때, 후새가 그것을 이렇게 방해한다,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나이다. (...)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개역개정 사무엘하 17장 7~13절)

 

후새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음이 확연한 까닭은, 그가 대(大) 다윗왕이라는 아버지를 둔 아들, 압살롬의 열등감과 우월감을 얼마나 교묘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열등감을 건드린다,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즉, 압살롬 내면의 두려움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곧 그의 교만함을 부채질한다,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즉, 압살롬의 입장에서는 몰래 군인들을 보내어 다윗왕만 죽이고 도적처럼 획득하는 실리보다는, 대대적인 전면전을 일으켜 온 이스라엘에게 자신이 다윗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압살롬이 어리석게도 후새의 작전을 택하자마자, 아히도벨은 조용히 집으로 내려가 목매어 자살한다. 천재였던 그는 이미 다윗 편의 승리를 확신하고 절망한 것이다. 


영화 <밀정>의 주제 역시 절망과 희망의 싸움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로서는 당시의 적이 뚜렷하게 구별되지만, 그 시대를 살던 지식인들에게는 대세와 실리를 쫓아야 한다는 관점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실제 수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의 근대화와 세계화에 유익하다고 믿었으며, 일본 제국의 실권자들과 한국의 독립을 투쟁하는 임시정부 사이에서 갈등했었다고 한다. 젊을수록 정의와 현실을 단순하게 그리는 법이지만, 실제에 부딪혔을 때, 즉, 상해와 만주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민족주의자들이 삼삼오오 분열되고, 임시정부 역시 믿을만하지 않을 때, 그들은 승리의 확신 없는 절망 가운데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실재했던 황옥사건을 기반으로, 역사적으로 아직도 확인할 길 없는 그의 내면 세계의 갈등, 절망과 희망의 싸움을 그려낸다. 


나는 현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갈등과 내면의 싸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니까, 종교인이니까, 율법에 쓰여 있으니까, 지키고 싶었던 선과 도덕의 틀이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지키려다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것을 깨닫게 된다. 성경은 도덕적인 책이 아니며, 세상의 선은 단순하지 않다. 여기에서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동인은 (극중에서는 이정출의 입술로 “남자는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혹은 정채산의 입술로 “나는 다만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한다”고 표현되는 그것은) 그/그녀가 무엇을 “희망”하고 있는가이다. 절망적인 싸움에 뛰어드는 사람에게조차도 그의 희망은 “인간다운 도리” 인 것이다. 인생은 ‘무엇에 절망하고 무엇을 희망하는가’로 결정지어진다. 나는 성경에서 이 희망을 “믿음”이라고 배웠다. 결국 의인은 (힘도, 지혜도, 권력도, 부도, 어떠한 전쟁도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후일, 김원봉 선생님은 황옥경사가 이중스파이, 즉 독립군이었다고 증언하셨다. 그러나 그 자신이 법정에서 본인은 일본제국에 충성했다고 증언하였고 실제 처벌 역시 상당히 경감되었으므로 그가 독립군이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는 셈이다. 다만, 그가 법정에서 울며 억울하다고 통곡했다는 기록은, 처연하다. 그의 진의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그렇게까지 살아야만 했던 한 젊은이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비롯하여 생존을 위해 오늘도 필사적일 현대의 젊은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금도 우리 대부분은 흔들리고 있다. 믿어주는 상관을 위해 인생을 걸어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자신도 믿을 수 없으며 오직 마땅히 해야만 할, 산더미같은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수 백번 수 천번 흔들린다 해도,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오직 그의 희망이 그의 인생을 결정지어줄 것이다. 나는 무엇을 희망으로 보는가. 이 땅에 임할 그의 나라 - 나는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가. 


추신 1. 이중스파이들의 말로는 대개 비참하다고 한다. 어떤 나라도 그를 신뢰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후새는 다윗왕이 승리하고 복권되었을 때 다시 그의 신하가 되었다. 그는 끝까지 다윗의 나라에 속해 있었다. 


추신 2. 영화 초반, 워너브라더스의 로고가 떠오를 때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지만, 마치 뮤지컬 <라이온킹>의 쥴리 테이머 Julie Taymor가 처음 디즈니에서 온 연락에, “저는 디즈니 류는 안 만들어요” 라며 거절했더니 그 담당자가 “디즈니처럼 만들지 마시고, 작가님처럼 만들어 주십시오.” 라고 대답하여 그 아름다운 무대세트와 놀라운 가면과 의상이 탄생했던 것처럼, 나의 기우였다. 다만, 화면의 톤이며 소품과 음악이 내게는 왠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연상시켰다. 확실히, 영화 후반 역설적으로 흐르는 재즈 선율은 이 어두운 동양 영화를 보게 될 서양인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다. 김지운 감독님이 역사의 깊이와 흥행, 두 마리의 토끼들 사이에서 삽입했을 듯한 기차 안의 에피소드나 이정출의 폭파 부분은, 이 영화가 기반하고 있는 실제 역사의 내용에 감동 받았던 나에게는 너무 심하게 달콤한 감미료였지만, 그 외에는 모두 좋았다. 특히, 김지운 감독님의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연출이 지킨 절제의 선들이 무척 좋았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다. 어떤 친구는 너무 밋밋해서 재미없었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영화가 현실적이고 싶으면서도 로맨틱하게 꾸민 듯하여 맘에 들지 않았다고 했다. 이해되는 까닭은, 김지운 감독님의 영화가 “장화 홍련” 부터도 이미 스타일리쉬하여, 보기에 멋있는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영화가 멋있는 '척'하고 아름다운 '척'하는 후까시에는 관대한 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참 좋은 영화여서 다행이었던 연휴였다. 이번 추석도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