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리라 19. 사무엘상 5장

2018. 10. 22. 19:41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어렸을 적 SFX 영화나 만화들을 볼 때, 저 먼 은하계에서 마주친 외계인이 설사 영어를 쓴다 해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외계인들은 눈 코 입이라는 인간의 감각기관과 두 팔 두 다리의 기능적인 측면을 조금 기괴하게 변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개수를 바꾼다든지 길이를 바꾼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SFX는 달랐습니다. 그가 1972년에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 <솔라리스 Soláris>의 외계인은 ... 무어라 말해야 할지요 - 바다 같습니다. 저의 개념의 한계 안에서는 ‘바다’ 외 다른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외계의 생명체는 육신도 없습니다. 그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기억을 물질화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그 행성을 폭파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계가 인간과 소통하는 방식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 파괴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인 켈빈의 눈앞에 자살한 아내가 나타났을 때, 켈빈은 경악했습니다. 그 아내(라는 물질을) 죽이고 죽여도 다음 날이면 또 다시 나타나 있습니다. 마치 마음 깊은 곳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자꾸 기억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아픈 기억이 육신을 입고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우주선 안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무너져갑니다.  


외계人이라는 단어에 이미 인간의 한계가 서려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계인을 그려볼 때 기껏해야 3차원적 인간의 감각 기관과 운동 기관의 모습을 변형하는 데 지나지 못했던, 우리의 빈핍한 상상력처럼, 블레셋의 신관도 그러했습니다. 고대인들이 생각하던 신은 인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습니다 - 인간처럼 먹고 자고 욕망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죽이고 죽는. 그들이 섬겼던 다곤은 바다의 신이었는데, 당시에는 신마다 관할 구역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아 온 작은 상자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무소부재하시는, 유일한 신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신이 이방인들과 소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블레셋인들이 언약궤를 다곤신상에 자랑스럽게 갖다 둔 다음 날 아침, 자기들의 신상이 쓰러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다시 일으켜 세워 두었지만, 그 다음 날에도 쓰러져 머리와 손이 몸통으로부터 조각나 버렸습니다. 다곤은 반인반어(伴人半漁)의 신이었으므로 블레셋인들이 발견한 장면은 마치 생선 한 토막이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이것이 하나님의 복수라고 오해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것은 체급이 맞지 않는 싸움입니다. 아니, 단순히 안 맞는 정도가 아니라 얼토당토하지 않은 일입니다. 왜 굳이. 


그리고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고대에서 전염병은 신의 저주였습니다. 혹시나 하면서 언약궤를 거인의 도시 가드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큰 자나 작은 자나” 저주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려하자, 에그론인들은 결사반대합니다. 이 신 - 자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셨으며 심지어 제단의 돌조차 다듬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어차피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표현하거나 정의할 수 없는 이 신을 감당할 곳이 지구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정한조 목사님께서는 이것이 블레셋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극과 고통이 자비라니 - 하나님은 새디스트입니까? 그러나, 사무엘상의 저자는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마칩니다. "[블레셋인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12절) 이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직전의 묘사와 일치합니다. 즉, 이 고난의 행진을 보면서 독자들이 이집트의 열 가지 재앙을 연상할 수 있도록 살짝 운을 띄워 둔 것입니다. 


정말 그럴 마음을 먹었다면, 그냥 행하면 됩니다. 열 단계로 나누어 말을 걸지는 않습니다. “나 화났다”고 거듭 이야기하는 부모나 연인의 말은 “와서 달래주라”는 뜻일 때가 많습니다. 블레셋인들의 그 비루한 신관 안으로 굳이 들어오셔서 신상을 두 번 엎으신다든지, 저주의 상징인 전염병으로 거듭 치신 여호와의 엄중한 손길은 역으로, “너희는 도대체 누가 진정한 신인지 판단하라”는 유일신의 강력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실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 열 가지 재앙을 겪으며 여호와 하나님이 진정한 신이라고 믿게 된 수많은 잡족들이 함께 애굽을 나왔고 이스라엘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고난에 대하여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저에게 이해되지 않는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왜 온 우주의 주인이신 그 분께서 굳이 한 세포 안에 들어오셔서, 연한 새 순 같은 아기의 육신을 입으셨을까 - 이 비루한 인간들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셔서, 이 빈핍한 인간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을까...? 왜 그 때 굳이 나에게 찾아오셔서, 왜 내게 그 말씀을 주시고... 사랑한다고 고백해주셨을까. 그것은 너무나 체급이 맞지 않는 일, 얼토당토 않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