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리라 21 사무엘상 7장

2018. 11. 5. 12:57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대사 한 마디 없이 곰과 동물들만 나오는데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 영화가 있습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베어 (곰, L'Ours, 1988)> 는 아기 곰 두스가 엄마곰을 잃고 혼자 떠돌다가 삼촌 뻘 큰 숫곰 바트를 만나서 함께 살게 되는 일종의 로드무비이자 (^^ 곰 두 마리가 끊임 없이 돌아다니지요) 성장영화입니다. 

바트랑 떨어지게 된 아기곰 두스는 퓨마에게 쫒깁니다. 짧은 발로 헉헉 거리며 도망갔지만 얼마 못 가 작은 낭떠러지 끝 나뭇 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린 두스, 퓨마가 한 발을 내딛자 그만 아래로 떨어집니다. 다행이도 아래엔 시냇물이 흘렀고 아기곰은 나뭇가지를 붙들고 떠내려 갑니다. 간신히 시냇가에 도달하는가 싶었는데 바로 그 곳에서 퓨마가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혼비백산하여 반대편으로 도망가는 두스 - 그러나 버둥거리는 반대방향으로 휩쓸려 갑니다. 흠뻑 젖어 기진맥진한 아기곰 곁을 퓨마는 뭍으로 여유있게 따라갑니다. 

결국 두스가 뭍에 이르렀을 때 천천히 다가가 앞 발로 내리치는 퓨마, 그러자 아기곰은 피를 흘리며, 마지막 용기를 내어 사나이, 아니 곰답게 부르짖습니다. "워우우우우..." 그러자 왠일인지 퓨마가 움찔 하더니 뒷걸음질 칩니다. 그리고는 356계 줄행랑을 칩니다. 두스는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포효합니다 "워우우우우~" 그런데, 자기 목소리가 아닙니다. 뒤를 돌아보니 삼촌곰 바트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 네, 퓨마는 바트를 보고 도망간 것입니다..! (PS1에 링크 된 유튜브 영상을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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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블레셋이 침공했을 때 이스라엘은 전열을 가다듬고 진영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상 7장에서는 약간 다릅니다. 그들은 사무엘에게 기도해달라고 청합니다. 심지어, 눈 앞에 블레셋 군인들이 다가오고 있을 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번제"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오히려 우뢰를 보내어 시간을 벌어주셔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삼상7:10)"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기도도 좋지만 자신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 옳은 말이며,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맞아야만 하는 말씀입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상응하는 댓가가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해두신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대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먼저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한 근면 그 이상입니다. 

분명 세상을 향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진영을 세워야 하지만, 크리스천들은 세상과 비교하여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모든 힘을 다 하여 그 일에 뛰어들고 있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해 낼 것입니다. 플랜A가 실패하면 플랜B가 있고, 플랜C가 있으며, 그렇게 살 길을 모색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의 방법은 어떠합니까? 모든 힘을 다 하기 전에, 이미 나의 마음은 하나님과 교회 일로 분산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의를 추구합니다. 플랜 A, B, C를 논하기 전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애초 우리는 세상과 경쟁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즉, 세상의 방법으로 이 전쟁을 대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엡2장 2-7절) 

이 때 사무엘상 7장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는 성경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이미 전쟁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뒤에서 마치 삼촌곰 바트처럼 포효하고 계시다는 역사를 기록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주님께서는 급할 경우엔 우뢰도 보내시고 삼촌곰처럼 직접 나서기도 하십니다. 연약한 우리로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달려가는 것 외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저는 지금 전쟁 같은 일상을 치르고 계실 성도님들의 삶 모퉁이와 모퉁이마다 에벤에셀의 돌이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 기도한다고 하여 눈 앞의 퓨마, 즉 어려움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영화와 우리의 현실이 다른 점 한 가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간혹 장애물을 없애버리기도 하시지만, 대개의 경우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형상을 닮은 데까지 자라나게 하십니다. 내가 괴로워서 기도하던 그 장애물보다 훌쩍 커버려서 가볍게 뛰어넘어 버리기를 기대하십니다. 혹 장애물에 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면 허락하시지만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시37:24) 혹시 장애물로 인해 상처를 입으면, 꼭 지켜주시고 나을 때까지 끝까지 보호해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의 믿음을 보이지 않는 세계에, 우리의 눈을 그 높은 곳에 두라 하십니다. 진정한 기적은 눈 앞의 장애물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이 죄 된 세상에서 내가 살아남아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데 있습니다. 



PS 1. 어린 시절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아기곰 두스가 엄마를 잃는 장면과 삼촌곰 바트를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었습니다. 즉, 모든 게 연출된 것인 줄 전혀 모르고 보았던 것인데, 어른이 된 지금도 저는 감독이 어떻게 곰들로부터 이런 연기를 뽑아낼 수 있었을지 참 궁금합니다. ^^ 그 중, 제가 매료됐던 후반부의 클라이막스를 위에 묘사했는데요, 마침 유튜브에 있어서 링크를 드립니다: 아기곰 추격 신

PS 2. 정한조 목사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