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리라 24 사무엘상 10장

2018. 12. 3. 16:21성경 공부 /영화와함께-2018

신이 주신 소명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많은 청년들이 질문합니다: "그 일을 할 때 제 마음 속 깊이 기쁨이 있었어요." "모든 상황이 맞아 떨어져서 운명이 인도해 주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시절 만난 스승이 제게 재능이 있다고 하셔서 하게 되었어요."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저의 천직이라 믿기로 결심했어요." 크리스천 청년들은 이렇게 질문하곤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소명을 따르고 싶어요 - 그 일이 무엇인지만 알 수 있다면. 열정과 재능을 주신 일이 바로 소명인가요? 아니면 여건을 허락하신 일일까요? 환경에 짓눌리지 말고 믿음으로 쫓아 가야 할까요? 아니면 지금의 환경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 생각하며 순응해야 할까요? 

평생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이 질문은, 모더니즘을 거친 현대인들이라면 누구에게도 단순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위에 언급된 요소들이 모두 종합적으로 상호 관계를 주고 받으며 각각의 인생들을 인도해 갈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댄서"는 세르게이 폴루닌 Sergei Vladimirovich Polunin이라는 천재 발레리노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과 함께 자아를 발견해가는 여정을 기록한 영화입니다. 최연소 로열발레 수석무용수라는 기록을 지닌 이 청년은 가난한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교육열과 가족들의 경제적인 지원으로 영국 로열 발레단에 입단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희생은 막대한 것이었습니다. 학비를 대기 위하여아버지는 포르투갈로, 할머니는 독일로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십 대의 소년이었던 폴루닌은 자신이 반드시 가족들을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발레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부모가 이혼하면서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토록 달려가던 동인이 가족의 행복이었는데, 그 가족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세르게이 폴루닌은 마약과 파티 그리고 돌발행동으로 악명을 얻었습니다. 배우들이나 무용수들은 어떤 역할에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므로 문신을 회피하기 마련이지만 그의 몸은 마치 자신의 소명을 부정하듯이 온통 문신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발레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어머니의 선택이었으며 어딘가 크게 다쳐서 다시는 춤을 출 수 없게 되기를 바랬다는 고백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청년에게는 춤을 업으로 삼은 예술가들이 모두 동경할만한 조건들 -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 동료들보다 두 배의 연습량을 채우는 열정, 그리고 세계 최고의 발레단에 입단하는 행운도 있었는데, 한 가지 치명적인 요소가 부재했던 것입니다. 소명감 - "나는 누구인가 - 왜 매일 이 혹독한 일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서고 나서야 하게 되었을 때, 그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가족도, 예술도, 부와 영예도, 젊음과 건강도... 그에게는 모두 헛되었습니다.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삼상10:7) 

사무엘이 사울에게 비밀리에 기름을 부었을 때, 사울의 소명은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네 마음에 있는 것"을 "기회를 따라 행하라"는 마치 백지수표 같은 선지자의 말이 과연 그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성경은 해석해주지 않았으며 다만 그의 행동만 기록해 두었을 뿐입니다. 영적인 체험 후에 산당에 갔고, 숙부 (아마도 나중에 군대장관이 된 아브넬이리라 추측합니다)의 비상한 관심에도 침묵했으며, 정말 왕으로 뽑혔을 때에는 도망갔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겸손으로 해석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것을 자신감 없음으로 해석할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는 인정받았지만 이제 사람들의 인정도 받아야만 한다는 현실입니다. 그것이 아마 사울에게는 큰 숙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11장에서 그가 어떻게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지 보게 될 것이며, 그 이후에는 그 사람의 인정이 어떻게 사울을 삼켜버렸는지도 보게 될 것입니다. 

청년 사울로선 자신에게 왕다운 자질이 있다고 믿기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기드온에게 그 천사가 "강한 용사여"라고 불러 주었던 상황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가 행구 사이에서 끌려나와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주었던 사무엘 앞에 섰을 때에는 얼마나 민망했을까요..! 그러한 그였지만, 동족이 위기에 처하자, 난데 없는 용기가 솟아나왔습니다. 이것은 스포일러이지만, 11장에서 그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길르앗 야베스를 위하여 분노합니다. 즉, 왕의 자질이란 절대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한 의분이었던 것입니다 - 후일 다윗도 이와 같은 수순을 거쳐 이스라엘 역사에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의분으로 우리들의 궁극적인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 어떤 불량배들은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여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26b-27) 

네 분의 공동 담임 목사님들을 떠올리며, 이번 학기의 마지막 성경공부가 사무엘상 10장인 것이 제 눈에는 시의적절하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력한 자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사울과 함께 가도록 해주셨습니다. 사무엘 역시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인도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무엘의 번제와 화목제로는 사울이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욕망에 삼키우는 비극을 막지 못하였지만, 먼 후일 친히 그 피로 희생 제사를 지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울이라는 이름의 전도유망한 청년을 바울로 바꿔주시고 위대한 소명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교회를 사랑하여 인도해주시고 친히 머리 되어주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100주년기념교회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명을 부여받으신 네 분의 목사님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