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 with Him | 다시 시작할 때 주시는 위로와 용기 (에스라 5:1~2)

2016. 10. 22. 12:52성경 공부 /일반

"Ezra Reads the Law to the People," one of Gustave Doré's illustrations for La Grande Bible de Tours



기도 모임 지체들 중 한 명이 에스라를 읽으면서 묵상한 내용을 공유했는데,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언제나 실패를 거듭하는 나에게도 위로와 용기가 되어서 '본인의 허락 없이 :)' 블로그에 공유한다. 특별히, 오늘의 묵상은 에스라 5장을 시작하는 단 두 구절일 뿐인데도, 학개와 스가랴를 아울러 넓고 깊게 내려간다. 애초, 그가 이 성경을 통해 던진 닻은 사람을 향하지 않고 신을 향했었으며, 아래의 달콤한 결실을 보면, 단단하게 잠겨있던 그 두 구절들을 힘겹게 벌려 내민 그의 손을, 주께서 맞잡아주셨던 것 같다. 혼자 읽기 아까운 평신도의 묵상. 


***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단 두 절에 불과하지만, 깊고 풍성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약 16년간 영적 침체에 빠진 유다 사람들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보다 깊이,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개서’와 ‘스가랴서’를 함께 묵상해야 한다. 또, 이 말씀은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씨름해본 적 없는 사람을 위한 말씀이 아니다. 풍요와 안정을 누릴 수 있었던 바벨론 땅을 뒤로 하고 믿음과 소망을 품고 황폐해진 땅 유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뜨거운 열심으로 하나님의 일(성전 공사)을 시작했던 믿음의 사람들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전 공사의 중단, 그것은 애초부터 그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생계와 안전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마음에 감동이 있었으므로, 그 염려와 두려움을 앞서는 뜨거운 믿음과 열심이 있었다(스 1:5, 스 3:3-5, 스 4:10-13). 그런데 대내외적인 고난과 위협의 현실을 마주하자 그 믿음과 열심은 사그라져 갔다. 그래도 한두 번은 더 믿음과 용기를 쥐어짜며 버텨보았다(스 4:3). 아마 그들은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또 절기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기도 했을 것이다. 아니, 귀환하기 오래 전, 바벨론 땅에서부터 70년 동안 절기를 정하여 금식하고 애통하며 기도했을 것이다(슥 7:2-3, 5).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선지자 다니엘의 금식과 애통의 간구도 있었다(단 9:1-19, 단 10:1-3). 그럼에도 상황은 잘 풀리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계속 침묵하시는 것만 같았다. 결국 유다 사람들은 낙심하고 좌절했다(스 4:4). 생계 기반도 마련하지 못했는데 대적들의 훼방과 위협은 계속 거세어짐으로써 두려움이 점점 자라나 믿음과 열정을 삼켜버렸고 신앙과 삶의 우선순위를 뒤바뀌게 만들었다. 성전 재건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했으므로,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무너진 신앙에 대해 합리화시키면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는 중단하고 자신들의 생계와 안전을 위해 각각 자기 집을 짓고 생업에 종사하는 데 주력했다(학 1:2, 6, 9). 


여러 의문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안정된 삶을 버리고 바벨론 땅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왔고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하는데 왜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한 것인가? 오히려 귀환하지 않고 바벨론 땅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자들이 왜 편안하게 더 잘 살고 있는가? 귀환한 이 땅에서 생계의 기반조차 아직 마련하지 못했고 대적들의 훼방은 더 거세어지면서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돌봐주시지 않는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계속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대적하는 저들은 계속 강하고 평안한가?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의 상황을 알고 계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침묵하시는가? 우리가 지금 생계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성전 공사에 열중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그렇게 약 16년이 흘렀다. 오랜 침묵을 깨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에게 임했고, 그들이 전한 예언의 말씀을 통해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달(학 1:1), 일곱째달(학 2:1), 여덟째달(슥 1:1), 아홉째달(학 2:10, 학 2:20), 열한째달(슥 1:7), 그리고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달(슥 7:1) 등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번갈아 주어졌다.


학개의 첫 번째 예언 - 회개하라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달 이십사일에 다시 시작(학 1:15)하였으므로, 그 공사를 시작하도록 이끌었던 것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 선포된 첫 번째 예언이었다. 그 예언의 말씀은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의 말씀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성전 건축을 중단하면서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고 합리화시켰던 명분과 성전 건축 보다 먼저 자신들의 생계와 안전을 위하고자 했던 그들의 숨은 동기, 곧 그들의 신앙과 마음의 상태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정곡을 찌르며 책망하셨다(학 1:1-11). 성전 공사를 중단했던 지난 약 16년간 유다 사람들은 생계와 안전을 위해 많은 수고와 노력을 쏟았지만 그들의 형편은 계속 어려웠고 그 수고와 노력에 비해 얻은 결실은 너무 적었는데(학 1:6, 9-11),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그 까닭은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한 채로 버려두고 각각 자기 집을 짓는데 빨랐기 때문(학 1:9)임을 가르쳐주시면서 ‘성전을 건축하라(학 1:8)’고 명령하셨다. 유다 사람들의 무너진 신앙, 스스로 합리화시키며 안주했던 영적 상태를 폭로하며 ‘회개하라’는 강한 메시지였던 것이다.


정치지도자 스룹바벨과 종교지도자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비롯한 남은 유다 사람들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그 회개의 메시지를 생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음으로써 그들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었다(학 1:12).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두려워함으로써 무너졌던 신앙과 삶의 우선순위를 회복하게 된 것이었다. 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셨고(학 1:13),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모든 유다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심으로써 다시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시작하게 하셨다(학 1:14-15). 여기서 ‘마음의 감동’은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영혼을 흔들어 깨워주셨다는 것, 곧 ‘영적 각성’을 의미한다. 6/1~24, 그 24일 사이에 학개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회개의 메시지’로 유다 백성들에게 ‘부흥(영적 각성)’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었다.


학개의 두 번째 예언 - 위로와 격려

그리고 다시 성전 건축을 시작한지 약 한달 후, 재건되는 성전이 옛 성전(솔로몬 성전)에 비해 보잘것없이 여겨져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 일이 초라하게 느껴져 흔들리는 이들에게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고 격려하시며, 옛 성전의 영광보다 지금 짓고 있는 이 성전이 더욱 영광스럽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스가랴의 예언 - 진정한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달, 선지자 스가랴를 통해 첫 번째로 주어진 예언의 말씀 역시 ‘회개의 메시지’였다(슥 1:1-6). 유다 사람들의 몸은 유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전 건축도 하고 있지만, 아직 그 마음과 삶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과거 조상들의 실패를 거울로 삼고 성전 건축이라는 외적 행위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을 촉구하시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재건하시고자 하신 진짜 목적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나라인 ‘영적 예루살렘 성전’이었던 것이다.


약 16년간, 무의미하게 잃어버린 것만 같았던 그 시간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지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대내외적인 고난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낮추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와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준비시키셨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심령이 회복되고 ‘영적 각성’이 일어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사명의 삶’을 다시 이어가게 되었다. 또,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왜 그들이 성전 건축에 실패했는지를 다각적으로 가르치시고 그들이 가졌을 신앙의 여러 의문들에 대해 답을 주셨다(특히, 스가랴의 8가지 환상(슥 1:7-6:15)). ‘만군의 여호와’, 온 천지만물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언의 말씀들을 통해 인본(人本)적인 두려움, 그리고 인본(人本)적인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마음을 깨뜨리셨고, ‘하나님의 영’으로만 성전이 건축됨을 가르쳐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것을 약속하셨다.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 성전이 전부가 아니며 만민에게 확장되고 영원까지 이어질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세워지는 하나님의 성전, 곧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계시해 주시면서 예루살렘의 구원과 회복에 대한 소망과 약속을 주셨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일으키셔서, ‘회개의 메시지’를 통해 오랜 영적 침체에 빠진 유다 백성을 회복시키시고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통해 강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성전 건축이 다시 이루어지게 하셨다.


정인창, 에스라 묵상 중에서, 2016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