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책 | 숨결이 바람될 때

2016. 10. 27. 18:13글/나의사랑하는책


남편의 중성지방 수치가 1480, LDL은 450, HDL은 20이란 검사결과를 받았을 때, 이 책이 읽고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건강을 되돌릴 수 있을까?" 남편은 해맑은 얼굴로 건강한 듯 회사에 다니고 운동을 하지만, 이 수치는 사실 오늘 당장 그가 심장발작을 일으킨다거나 뇌졸증으로 쓰러진다해도 이상하지 않은 팩트이다. 화창한 가을 햇살 아래, 나는 그가 가져다준 보험증서들을 베개삼아 편안하게 소파에 누워서 이 책을 한 달음에 읽었다. 책의 저자인 폴 칼라니티는 레지던트 마지막 해 자신의 폐암을 발견하고, 투병과 함께 이 책을 집필했으며, 완성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죽음 이후, 그의 책은 딸과 함께 세상에 남은 아내 루시가 마무리하여 출간했다. 책의 제목은 아래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당신, 죽음 안에서 생명을 찾는 자여, 

이제, 한 때는 당신이 숨쉬던 허공 안에서 그것을 찾으라. 

다 알 지 못 할 새로운 이름들, 잊어버린 옛 이름들: 

시간이 육체를 끝낼지라도, 영혼은 불멸하리니, 

독자여, 그러므로 시간을 벌라, 살아있는 동안, 

영원을 향한 발자국을 떼어라.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본전도 찾기 힘든 일이지만, better than nothing. 나 역시 '영원을 향한 한 발자국'을 위해 오늘 종일 양파로 수프를 만들고, 아로니아를 다듬으며, 비트쥬스를 주문했다. 즉, 나는 남편의 중성지방과 싸울 것이다. 이렇게 나의 전의를 불살라준 책의 한국어 제목은 "숨결이 바람될 때" 아름다운 번역이다. 원문은 좀 더 광야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가 내쉬는 모든 호흡은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듯이, 내 호흡이 당신이 들이마시는 공기의 일부가 될 때. 생명이 내쉬는 숨 한 번도 허공으로 사라지는 때. 즉, 죽음의 순간은 나의 숨결이 바람이 되는 순간이다.  

의사가 자신의 암투병을 썼기 때문에, 오직 의사만이 알고 표현할 수 있는 깊이가 있다. 의사에서 환자가 되었을 때, 주체에서 객체, 주어에서 목적어가 되었을 때, 저자는 깨달았다,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 지 못한다." 어쩌면 그것은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냉혹하게 몰아부칠 수 없을테니까.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미덕일 것이다: '객관'이 어쩔 수 없이 '주관'이 될 때. 의사로서 환자인 자신의 죽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 책을 읽으면, 폴 칼라니티가 얼마나 뛰어난 의사였을 뿐 아니라 고귀한 사람이었고 내면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작가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암이 재발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가슴 시리게 아프다. 많은 독자들은 그가 딸을 낳고 생명연장 치료를 거절하여 가족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과 아내가 쓴 에필로그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눈물을 불러낸 부분은 아래의 장면이었다. 마지막 남은 힘 한 방울을 발휘하여 수술을 집도하는 장면. 다른 동료들에게는 고통을 숨겼지만,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확연한 통증을 느끼며, 환자의 수술 부위를 막 꿰맨 참이다. 

훌륭했다. 잘 된 수술이었다. (...) 나는 간호사들이 수술실을 정리하고 마취과 의사들이 환자를 깨우는 동안 컴퓨터 옆에 앉아 지시 사항을 입력했다. 나는 항상 수술을 맡을 때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신나는 팝송 대신 보사노바만 틀겠다고 장난스럽게 농담하곤 했다. 게츠 질베르토의 앨범을 틀었고, 부드럽고 듣기 좋은 색소폰 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나는 수술실에서 나와 7년 넘게 일하며 쌓인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 갈아입으려고 놔둔 옷 볓 벌, 칫솔, 비누, 휴대전화 충전기, 과자, 내 두개골을 본 뜬 견본, 신경외과학 도서 ...... 

다시 생각해보니 책은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여기에 두는 게 아무래도 더 쓸모 있을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가고있는데 동료 레지던트가 내게 다가와 뭔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의 호출기가 울렸다. 그는 호출기를 보더니 손을 흔들고는 몸을 돌려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이렇게 소리쳤다.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운전석에 앉아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건 뒤 천천히 도로로 나가는 동안 눈물이 차올랐다.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나는 흰 코트를 걸어놓고 신분증을 떼어냈다. 그런 다음 호출기에서 배터리를 빼고 수술복을 벗은 뒤 오랜 시간 샤워를 했다. 

영화로 치면 이 부분은 대사 없는 롱테이크일 것이다: 한 남자가 이제 자신의 싸움을 끝내고 항복을 선언하는 모습을, 그 날의 견딜 수 없던 육체의 고통을, 내면의 폭풍 같은 절망과 체념, 그리고 열정을 바친 일에 고하는 영원한 이별을, 마치 묵묵한 카메라처럼 그저 담담한 일상의 묘사 안에 뼈아프게 녹여내었다. 결국 그 날 그는 패배를 인정했다. 

어쩌면, 첫 번째 암 발생 이후 반짝 빛났던 회복과 레지던트 졸업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던 삶을 몇 개월만이라도 살아보라고 주신 기회.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도 역시 그처럼 선물 같지 않은가.) 그 동안, 그는 죽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죽음을 준비하는 일을 삶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는 동시에 주신 삶을 기꺼이 누리게 되었다. 그 때 그와 아내는 딸 아이를 갖기로 결심했고, 성경 말씀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기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숨결은 바람이 되었지만, 우리에게 이 책이 남아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