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책 | Lone Stand & Forlorn Hope

2016. 8. 16. 11:53글/나의사랑하는책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치열이 바뀌어 있음을 깨달았다. 두개골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있었다는 것 외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달려가니 입 주변이 피범벅이었다. 치아 때문에 뚫린 입술에서 피가 계속 나고 있었으며, 윗니가 뒤로 밀려 입이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끔찍한 모습이었다는것 외 다른 고통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감사하게도) 신경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넘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남편이 “무슨일이에요?” 라며 방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놀랄까봐 얼굴의 피를 대충 닦았지만, 피는 잘 멈추지 않았고 바닥과 문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그가 놀라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피를 본 남편이 메스꺼워 했으므로, 이제 정말 정신차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소파에 앉아 한손으로는 입술을 지혈하고 한손으로는 전화기의 연락처를 훑으며, 연락 가능한 의사선생님들을 찾았다. 아침 일곱시 반, 전화를 걸기 무례한 시간이었지만, 가까스로 기억해낸 분은 친절하게도 나의 전화를 받아주셨고, 어떤 처치를 받게 될 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다. 동네 치과는 10시에 문을 여니 너무 늦고, 잇몸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남편은 가까이 살고계신 아버지께 도움을 청했다. 


그러면서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넘어진 까닭은 잠결에 핸드폰으로 어떤 기사를 읽고 잊지않도록 기록해두어야겠다는 다급함에 몸을 벌떡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컴퓨터 쪽으로 몇 발자국 걸어갔을텐데 넘어져 있던 곳은 냉장고 앞이었고 나는 내가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기억이 없다. 급히 몸을 일으켰을 때, 머리가 띠잉 했던 기억은 난다. 눈앞이 깜깜해지길래, ‘아 또 빈혈증상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후엔 기억이 없다. 아마도 걸어 가다가 그대로 쓰러진 것 같은데, 몸의 아파오는 부분들로 내가 넘어진 모양을 유추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치아가 너무 심하게 다쳐서, 왼쪽 얼굴이 바닥에 추락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왼쪽 무릎이 심하게 부어오르는 것을 보니, 아마 무릎 역시 바닥에 불시착했던것 같다. 왼쪽 얼굴이 멍들었고, 왼쪽 광대뼈와 턱, 왼쪽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으며, 왼쪽  팔을 들 수 없었다. 그렇게 절뚝거리며 나는 남편과 아빠의 에스코트를 받아 치과응급실이 있는 세브란스로 떠났다.  


휴일 아침 일찍 자기 집에서 넘어져서 응급실까지 간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사랑하는 두 남자의 호위를 받으니 다복하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세브란스의 시스템과 시설은 훌륭했다. 다쳐서 비틀거리면서도, 나와 같은 환자를 다루고 처리하는 합리적인 시스템과 최신 의료장비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당직 의사선생님은 더욱 훌륭하셨다. 수많은 치과를 다녔지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마취 주사는 처음이었다. 휴일에도 일하고 계셨던 인턴과 레지던트와 교수님은 내 치아들의 신경이 손상되었음을 발견해주셨고, 결국 연식 40년 된 내 입안에 제대로 된 치아가 몇 개 남지 않았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려 주셨다. 그러나 신경이 죽었으므로 아프지도 않았다. 


신경이 죽었으므로 아프지 않다는 것은 미묘하게 슬프면서도 확실한 위로였다. 누군들, 어느 정도 신경이 죽지않고서야 어떻게 견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오늘 이빨 몇 개 때문에수많은 의료기기에 둘러싸여서도 걱정없이 치료의자 위에 누워있지만, 언젠가는 이 지치고 낡은 육신을 떠날때가 되었다는 두려움과 날카로운 도구들에 둘러싸인 채 병원에 누워있게될 날이 곧 찾아올 것이다. 능숙한 마취주사의 감동에 이어서, 의사 선생님은 내 입안의 모든 감각들이 제거되었단 확신이 들자마자 프로페셔널하게 (즉 단순하고 망설임 없이) 내 치아를 제자리로 돌려주셨다. 두 번 힘 주셨던것 같다. 이제 입이 다물어진다. 혀를 어디에 두어야 할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말할 때 순음을 낼 수 있다. 감사했다. 


앞으로의 치료는 신경을 완전히 제거하고 다른 강한 부속물로 치아를 채워서 최대한 오래 쓸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시원찮은 앞니들도 계속 지켜보아야만 한다고도 하셨다. 다시 말하면, “많은 시간과 돈이 들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집에 돌아와서 다시 의기양양하게 글을 쓰고 있다. 넘어지기 전에 쓰려했던 것을 기억과 정보의 바다에 에 남기고야 말 것이다. 정신을 잃기 전, 꼭 붙들어 두려했던 기사. 난잡하고 부끄러운 나의 무의식가운데 건져올려두려 했던 그 기사의 두가지 키워드는 “고독한 선택”과 “가녀린 희망”이었다. 내가 건져두려 했던 글은 한국일보의 [가만한당신] 중 피터 오언의 죽음에 대한 기사였다. 기사제목은 “작품성만 따진 ‘고독한선택’ 출판계의 가녀린 희망이 되다.” 


오늘 자 포털의 기사 제목들은 이러하다: 경찰관 여고생 성관계 부산경찰청이 먼저 덮어, 후쿠시마 사고 당시 5세 어린이 감상선암, 5년 전 여중생 집단 성폭행 주범 3명 결국 구속, 광현호 선장 기관장 상상못할 정도로 잔혹하게 피살, 30세 에어컨 수리기사의 죽음, 세월호철근 400톤이 남긴 5가지 의문점.. 이 기사들 속에서 내가 괜찮은 까닭은 나의 신경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플란트 (혹, 끝까지 가난하다면 틀니)에 이르기전, “최대한 오래 쓰고 보존하기 위하여” 반드시 건져 두어야할 무언가, 이를테면 lone stand와 forlorn hope와같은 단어들은, 이 인터넷, 쓰레기의 바다, 나의 쓰레기 같은 무의식 가운데 반드시 건져 올려 소중히 여기고 오래도록 아껴주어야 한다. 가녀리지만 반드시 있는 희망을 고독하게선택하는 출판인이 있었다는 기사와 그러한 출판사가 버텨주었다는기사는, 바닥에 내동댕이쳐 지고 이빨이 다 나간다해도, 다시 일어나 적어둠이 마땅하지 않은가. 


http://hankookilbo.com/v/e06f31a489a54dcd877365ce896869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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