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 커피향기에 실린 소독약냄새 - 업타운카페 세브란스점

2016. 11. 8. 08:07맛있는/까페연가

남편이 새벽에 출근하는 날이면 지하철역까지 차로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새벽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오늘은 신촌 세브란스에 아침 8시 30분 예약이 되어 있어서, 새벽 길로 곧장 신촌에 왔다. 오랜만에 출근 행렬에 끼어있으니 흥분되어, 마치 출근하는 사람들처럼 즐겁고 박진감있게 운전하는 바람에 그만 너무 일찍 병원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6시 55분.
출근시간에 김포공항에서 신촌세브란스까지 20분만에 주파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무얼 해야 하나 당황했지만, 역시 우리 나라 최고의 병원답게 아침 일곱시에도 본관은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나는 비교적 한가하고 아늑한 카페를 찾아갔는데, (병원 음식점과 카페가 아무리 아늑한들 소독약 냄새를 품기 마련이지만) 아주 맛없고 차가운 BLT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서 사람들을 관찰하기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기대에 없던 브런치의 호사를 누렸다.

옆자리엔 하얀 가운과 흰 머리의 점잖아 보이는 의사 부부가 앉으셨는데, 부인은 활달하시고 남편은 다정하게 아내를 챙겨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레지던트들 앞에서는 엄청 카리스마 있으실 것 같은 반백의 의사선생님이 사모님 앞에서는 얌전하신 모습에 미소가 나왔다.

나는 큰 대학 병원 가기를 좋아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파서 문병하는 것을 제외하고) 까닭은 상황 상 어쩔 수 없이 기민해야하고 긴장해야하는 병원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잘 짜여진 시스템에 맞추어 정확하고 빈틈없이 움직이는 의료진들을 보는 흥분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긴박하고 정형화된 환경에서 일사분란한 모습으로 살 줄 모르는,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서 갖게되는 동경인 것 같다.


이미 본관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였다. 벽면에는 "세브란스는 의료선교기관입니다" 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몇 시간 후, 치과 의자위에서 턱이 아프도록 입을 크게 벌린 채 혹시 발치를 해야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고통스런 치료를 받게될 줄 전혀 모르는 채, 나는 홀린 듯 바쁘게 돌아가는 인파에 이리 저리 밀리면서 오랜만에 맛보는 일류 병원 로비의 생동감에 황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