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 보름산 미술관

2017. 11. 2. 16:35맛있는/까페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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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옆으로는 버려진 땅과 밭 그리고 야트막한 동산이 있다. 그 쪽을 가리키고 있는 "보름산 미술관"이라는 이정표를 볼 때마다 나는 궁금하면서도 막상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었다. 마치 들뢰즈의 '매끄러운 공간'처럼, 위험하고 황폐해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너머에 '보름산 미술관'이라는 표지가 있었고, 미술전공자로서 나는 '미술관'이라는 흔치않은 표지에 호기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엄마를 설득해서 함께 그 곳으로 넘어가 보았다. 아파트 단지와는 반대 편, 그 길 같지 않은 곳으로 핸들을 꺾었다. 그렇게 황량하게 버려진 땅과 붉은 락카로 낙서된 폐가 두어 채를 지나다 보니, 수줍은 글씨체의 표지판 '보름산 미술관'이 가리키는 작은 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길을 오르니 마치 마법처럼 보름산 미술관이 나타났다. 정성껏 가꾼 수목들과 낡았지만 운치 있는 집. 낙엽이 쌓여있는 마당 곁에는 체험학습장, 갤러리, 카페라고 쓰여있는 손수 만든 이정표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었고, 나무에는 밤과 도토리와 감이 잔뜩 열려있었다. 자연스러워서 아름다운 계단들을 올라가니 작은 카페가 있었다. 

홍시가 열려있는 나무 아래 돌 계단을 올라가면 카페가 있다.

도토리들을 줏지 않았다. 새들과 다람쥐들의 귀한 식량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카페 입구에서 찍은 사진. 아래층에는 어린 아이들이 미술 체험을 할 수 있는 방이 있고, 그 옆으로는 주인장이 살고 계신 듯한 가정집이 있다. 그 집 담장 너머로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낯선 우리를 향하여 반갑다고 꼬리를 마구 흔들어주었는데, 그 집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가장 아래 층엔 갤러리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화가의 작업실인 것 같았다. 

계단에서 데크와 2층 카페를 올려다 본 모습. "학교 종이 땡땡땡"을 연상시키는 귀여운 종들 앞 방이 아이들의 미술체험 교실이다. 

아쉽게도 카페 주인이 출타 중인 날도 있었다 - 위의 사진과 같은 놀라운 메모를 남긴 채. (참 예쁜 글씨체이다. '해외'라는 단어를 잘못 쓴 것도 왠지 정겹다.) 이 험한 세상에 아무도 없는 카페 문을 열어두고 여행을 가셨다니... 아무나 들어와서 편히 쉬다 가라는 메시지만 남긴 채! 그것도 아래와 같이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기본 세팅까지 해두시고!! 

왠지 마음 따뜻해지는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카페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남겼다.

저 창가에 앉으면, 가을에는 낙엽이 내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고 겨울에 흰 눈이 내릴 때는 설경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창 밖 저 멀리 외곽순환도로와 김포IC가 보일 만큼 아파트와 배기가스의 도시가 가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곳은 마치 자연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카페에 들어서면 "어, 왔어?" 하고 말을 거는 듯한 강아지 조각. 카페 구석 구석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과 도자기들이 가득하다. 

카운터에도 학교가 그려진 종이 매달려 있다. 이곳엔 미술체험장이 있기도 하고, 좋은 미술 서적이 있는 북카페도 있다. 

예쁜 그릇도 전시 겸 판매 중이다. 카페 주변의 나뭇 가지로 직접 만드신 듯한 십자가들도 아름다웠다. 

아마도 십자가는 저렇게 거칠었을 것이다. 가시 투성이 나뭇가지를 골라 만들어 주셔서 더욱 '고통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가 와 닿는다. 

담엔 남편이랑 아빠랑 모시고 다시 와야지. 친구들이 오면 자랑스럽게 데리고 와야지. 이렇게 우리 동네에서 좋은 카페를 - 좋은 이웃을 발견했다. 행복지수도 한 단계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