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 NY | 글로리아 (Gifted Hands, HFNY)

2016. 11. 24. 11:37글/New York,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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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쉘터에 머물던 글로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당시에 나는 브로드웨이에 있던 기프티드핸즈 Gifted Hands 라는 미술치료art therapeutic 프로그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동방예의지국 유교 문화의 소산이었던 나는 그렇게 나이 많은 할머니가 센터로 들어서는 것을 볼 때마다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여 그녀를 부축하곤 했고, 그래서 글로리아는 자연스럽게 내가 돌보게 되었다. 

지금 나는 부끄러움과 후회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알량한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매 주 기프티드핸즈에 갔지만, 내게 사랑의 마음이나 봉사의 정신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매일이 절박했으며 언제나 사랑이 고팠고 관심의 손길이 필요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곳에서 오히려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러한 나에게 주어졌던 글로리아 할머니는, 겉보기에 내가 그녀를 돌본 것 같지만, 아니, 사실은 그녀가 나에게 어떠한 기회를 주고 있었다. 내 안에 사랑이 없었다는 것은 오직 나와 주님만이 아실 것이다. 

그녀가 머물던 쉘터의 다른 홈리스 할아버지는 글로리아가 젊었을 때 아름다웠다고 했다. 나는 뉴욕 홈리스들의 로맨틱한 허세가 참 좋았다. 다행이 글로리아는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나날이 약해졌고 기침이 심해졌다. 당시 젊고 어렸던 나는 그녀의 타액이나 냄새를 개의치 않았다. 눈부신 브로드웨이의 쇼윈도우 아래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부축하여 홈리스 쉘터까지 함께 걸어갈 때면, 그녀는 언제나 내게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그 때 나는 너무 철이 없어서, 그 질문들이 글로리아가 갖고 있던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과 동경이었다는 것을 잘 알 지 못했다. 

결국 그녀가 쓰러졌을 때, 나는 그녀가 입원해있던 이스트 빌리지의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녀는 눈부시게 하얀 침대 안에 얇은 종이처럼 누워있었다. 아주 잘 새기고 건장한, 전형적인 의사선생님이 들어와 글로리아에게 활기차고 친절한 말로 이것저것 이야기해주고 나갔는데, 한국의 권위적인 의사선생님들만 경험했던 나는 잠시 황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글로리아는 대체적으로 모든 것에 무심하였다. 글로리아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한 후 속삭였다. 자신이 죽으면 어떤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집전해 주기로 되어있다고. 그것을 쉘터와 기프티드핸즈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아무리 철 없었어도,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가슴의 통증을 달래기 위해 말 없이 돌아서 병실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지금도 십 년 전의 그 날의 풍경이 선명하다. 뉴욕대의 학생들이 아름다운 단풍과 은행잎과 낙엽 사이로 싱그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글로리아가 나를 불렀다. 자신을 위해 울지 말라 하였고 입맞춰 달라 하였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떠났다. 

그 후 글로리아는 요양원으로 보내졌다. 나는 꽃을 들고 그녀를 방문하였다. 내심 이렇게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는 뉴욕의 시스템에 감탄하면서, 그녀에 대하여 그리 동정심을 갖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글로리아는 나에게 TV를 틀어달라고 했는데, 그 때 한 번 진심을 비쳤다. 내가 TV를 보면 좀 더 곁에 머물지 않겠냐고 덧붙인 것이다. 그러나 논문 준비로 경황이 없던 나는 그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고, 언제나 황급히 그녀를 떠나곤 했었다. 이것이 오늘 내가 가장 비통하게 후회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귀국하기 직전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나에게도 무심하였다. 나의 눈을 잘 쳐다보지도 않았으므로 나는 크게 낙심하며 예정되어 있던 구역모임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녀에 대한 걱정과 죽음의 그림자에 몰두하느라, 힘 없이 초인종을 눌렀을 때, 사랑하는 구역 사람들이 나를 위한 깜짝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행복에 겨웠고, 신의 부드러운 위로의 손길에 감탄하였다. 짙은 죽음의 그늘에서 가상 가족의 천국으로 옮겨간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숨을 거뒀다. 

그 때, 기이한 경험이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던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으므로 나는 공항에서부터 곧장 외가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했었고, 가족과 친척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 성탄전야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지만 확실하게 문득, 글로리아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가슴에 그녀의 존재가 따뜻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때는 그녀의 죽음을 미처 알 지 못했었고, 나중에야 기프티드핸즈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녀의 부고를 들었다. 임종은 내가 가족들과 성탄 파티를 즐기던 시간과 얼추 비슷했다. 어쩌면 글로리아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잠시 차원을 초월하여 나를 찾아와주지 않았을까. 내가 온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사랑도 모르고, 인생도, 인간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던, 철 없는 나를 용서해주지 않았을까. 

http://www.giftedhandsny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