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원 | 고구마 3

2017. 2. 1. 11:26글/엄마의 정원

엄마가 주신 고구마는 1년생 화초이다. 이모부와 아빠를 거쳐 내게 오기까지 30년의 세월을 견딘 낡은 스피커 위에서 자신의 노년을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다.  처음 고구마가 싹을 틔웠을 때, 이렇게 많은 햇빛과 그늘을 거느린,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나리라 예상하지 못하고, 다만 햇살을 마음껏 쬐라고 높은 스피커 위에 올려두었을 뿐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채워주어도 금새 바닥을 드러내던, 혈기왕성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틀에 한 번 물을 갈아주어도 괜찮아서 서운하다. 낙엽도 많이 떼어준다. 고구마의 본체도 물렁해지고 있다. 나는 바야흐로 고구마의 노년을 각오해야할 것 같다. 정말 시들은 모습을 블로그에 올릴 수 있을까... 자신은 없어서, 아직은 매일 아름다운 초록의 모습을 찍는다. 사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고구마의 사진을 찍고 있다. 아직 아름답다. 아직 놀랍도록 아름답다... 매일 찬탄하면서. 아침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을 넘겼다. 


인간과는 다른 시간의 우주를 살고 있는 고구마의 노년을 보면서, 이제 얼굴을 뵈면 허리가 아프다, 어깨가 아프다고 하시는 우리 엄마랑 이모들의 건강을 빈다. 나의 눈에는 아직 너무 아름답고 빛나는 엄마와 이모들이신데, 이제는 김포할머니, 분당할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우신다. 사랑하는 어른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실 것이란 진실 앞에, 아주 가끔 두려움이 몰아칠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작은 식물의 평생이 1년 뿐이라는 사실이, 나의 시간의 100분의 1이라는 사실이 못내 가슴 아팠는데, 그래서 상처 많이 받지 않으려고 일찍부터 이별을 준비했는데, 우리 고구마는 오늘 아침도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나의 기우였다. 오늘 아침도 주의 자비가 성실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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