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암. 수선화.

2017. 3. 20. 10:43글/엄마의 정원

희귀암 말기. 어머니를 간호하는 친구는 날로 초췌하여 가지만, 그의 두 어린 딸은 이 수선화처럼, 봄처럼, 병원 복도에서도 환하게 빛났다. 꽃을 좋아하시던, 내 친구의 어머니께 위로가 될까 하여 들고 간 수선화였지만, 내규 상 병실로 가져가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우리 집 창가에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밤 사이 이렇게 꽃망울이 터졌다. 

외롭고 고된 전투를 치르는, 친구의 어머니 손을 잡고, 부풀어오른 배를 잡고, 눈물 흘리며 기도해주던 남편이 정말 고마웠다. 어머니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는 길, 연약하고 덧 없는 우리 모두가 결국 마주하게 될 그 죽음의 순간에도, 주님 - 친구 나자로의 무덤 앞에서 포효하시던, 십자가 위에서 죽음과 싸우셨던, 나의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어서, 나는 병색 완연한 어머니의 마른 몸과 얼굴을 보면서도 맘 껏 눈물 흘릴 수 있었고, 오늘 아침 꽃망울을 터뜨린 수선화를 보면서도 맘 껏 미소지을 수 있었다. 나는 기도의 힘을 믿는다. 죽음의 엄위함 앞에서 겸손하게, 그 분의 사랑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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