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 아이

2017. 3. 4. 10:01글/일상


약의 힘이 놀랍다. 언제나 임신을 염두에 두어 무릎 통증에 대한 진통소염제를 억제했는데, 지난 수요일 밤, 20분 동안 같은 자세로 서 있었더니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왔다. 마침 다음 목요일 오전에 대학병원 정기 검진이 있었고 임신도 확실히 아닌지라, 무릎에서 물을 뽑고 비스테로이드 성 소염제 주사를 맞은 후 처방해 주시는 약을 이틀 먹었다. 그래서, 지금 무릎의 상태는 최근 수 개월 간 가장 좋다. 


사실 나는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불임클리닉을 찾아갔었다.  결혼 예식을 앞 두고는, 아이를 갖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먹는 약과 음식을 주의하기 시작한 터였다. 바르는 화장품과 비누, 샴푸의 성분도 꼼꼼히 따졌고, 직장을 그만 둔 후엔 미세먼지 많은 날은 아예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오랜 피부 알레르기에도 미리 임산부 전용 항히스타민을 복용하고 있다. 전통차를 마시게 되면 대추차를 선택했다. 커피를 마시면서는 ‘만약 아이를 갖게 되면 이 커피 한 잔의 위로를 어떻게 참을까’ 미리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 3년 간 아이는 오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시험관 뿐이다. 


오늘 아침도 배란테스터로 소변을 검사했다. 무의식 중, 내 마음 속엔 어설프게 얻은 인터넷 지식들이 활보하기 시작한다. 호르몬, 면역억제, 갑상선, 남편과 나의 비만 혹은 영양 상태… 나는 정말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 그러다 다시 문득 정신을 차린다. 나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고, 20대 때부터 소원 중 하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었다 – 좋은 엄마와 나의 진정한 현실과는 물론 거리가 멀겠지만. 사람들의 충고는 다양했다. "시험관을 한 번만 해 보아라. 아이가 없어도 괜찮다. 대신 일과 수입이 있어야 한다. 아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축복이었다. 나이가 들었을 때 아이들의 존재는 더 없는 위로이자 기쁨이다. 엄마가 되어보아야만 알 수 있는 사랑과 진실들이 있다…" 한 편, 아이가 없으면 나의 몸은 훨씬 더 편할 것이다. 이렇게 진통소염제도 마음껏 쓰고, 항히스타민도 먹을 수 있고, 스테로이드성 연고도 바를 수 있다. 커피를 먹거나 먼지 많은 날에 외출하는 것도 거리낄 것 없다. 방사능 걱정 없이 씨푸드 부페에 갈 것이며,언젠가는 일본도 여행갈 수 있겠지. 


내가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졌을 때 누가 나의 핸드폰을 설정해 줄 것인가! 그러나 그 모든 이기적인 이유들을 차치하고, 내가 신을 바라보며 아이를 소원하는 데는 다른 욕심이 하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를 키우고 싶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가치들을 사랑하는 아이를 기르고 싶다. 나의 모든 것을 다 주어도 괜찮은, 이기적인 내가 어쩔 수 없이 희생하고 사랑해야만 하는, 합법적인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녹슬어서 늙기보다는 닳아서 늙고 싶다.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 깊은 곳엔 케이시 켈러 사모님의 목소리가 항상 울리고 있다, “세상에 많은 부부들이 아이를 기도한다. 그리고 세상에 너무 많은 아이들에게 부모가 없다.” 아마 아이는 나의 모든 시간과 가능성을 가져갈 뿐 아니라, 나의 마음과 심리와 육체를 가져갈 것이다. 특히 나의 무릎, 내 몸의 모든 약한 관절들을 가져갈 것이다. 그래도 주님께서 아이를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주님께서는 내가 능동적으로, 내가 낳지 않았지만 세상에 주어진, 다른 아이들을 돌보기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 


궁구하고 궁구한다. 그러나, 늦은 결혼에 대해 조바심내지 않았던 것처럼, 아이에 대해서도 나는 평안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길과 여건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엽산과 오메가3를 챙겨 먹고 배란일을 계산한다. 하나님의 뜻을 궁구한다. 두렵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내 주의 산업을 기대한다. We walk by faith, not by sight. (고후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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