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원 | 호박

2017. 10. 20. 12:35글/엄마의 정원

내가 아프단 사실을 알자마자 엄마는 계속 음식을 보내기 시작하셨다. 아플 땐 고기를 먹어야 한다며 소고기 미역국을 냄비 채 통째로 보내셨고, 야채, 생선조림, 표고버섯전, 김치찜, 곤드레나물밥, 배, 오렌지, 매실액기스 등을 끊임 없이 갖다주셨다. 너무 달고 큰 무가 하나에 1900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격하셔서, 밤 새 깍두기를 담으시고 나와 며느리와 이모들과 할머니께 나르시느라 온 몸이 아프다 하시면서도. 

오늘 아침도 찬란한 햇빛이 거실에 쏟아지는데, 어제 저녁 엄마가 갓 지어 갖다주신 찰진 흑미밥을 한 그릇 데워서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아침 햇살처럼 당연한 엄마의 사랑... 이 사랑 없이 나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 주의 말씀 없이 나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오늘 아침은 조금 힘이 솟았다. 부엌을 치웠고, 호박을 샀고, 햇빛을 쪼이며 거리를 걸었다. 10일 만에, 상처를 디뎌도 아프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외곽에 살아서 좋은 점은 싱싱한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있다는 점이다. 아, 이렇게 우습게 아무렇게나 생긴 호박들이라니...! 촉촉한 야채에는 촌부의 글씨체로 "물기는 이슬"이라고 쓰여있다. 이 아름다운 작품이 고작 1천원이라니..! 여름의 그 햇살과 바람과 이슬의 대가가 고작 천 원이라니. 감사하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고, 게다가 그냥 주셔서 감사하다. 오늘 아침도 나이 들어가시는 우리 엄마가 여전히 내 곁에 계셔서, 감사하고 감사하다. 





' > 엄마의 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의 정원 | 건망증  (0) 2018.10.15
아줌마  (2) 2017.03.31
희귀암. 수선화.  (0) 2017.03.20
엄마의 정원 | 고구마 3  (1) 2017.02.01
엄마의 정원 | 가을도 떠나고 있다 (엄마는 여행중)  (1) 2016.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