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야기 |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헤어롤과 메리 케셋 Mary Cassatt

2017. 4. 3. 19:09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Mary Cassatt, Portrait of a Lady Reading Le Figaro, 1878 


유영하 변호사의 입에서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귀를 의심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그런 식으로 일하는 여성들, 특히 남성들과 마찬가지 경쟁 구도 속에 있는 직장 여성들을 비하했다. 이제 어떻게 여성 국회의원이 남성 국회의원과 똑같은 한 표를 달라고 유세할 수 있을까. 어떻게 여성 과장이 공평한 조건으로 인사 고과의 점수를 요구할 수 있을까. 


그러한 부끄러움을 지워준 역사적인 장면은 바로 그 대통령의 탄핵을 발표하던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출근 사진이었다. 밤 새워 선언문을 다듬고 나오다가 깜빡 잊고 그대로 둔 헤어롤은 수많은 직장 여성들과 워킹맘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대통령이 국정보다 성형시술과 머리손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사실에 실망스러운, 외모지상주의의 나라에 사는 국민으로서, 그 사진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여성, 선배의 모습이었다.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이 남성적인 혹은 남성과 대등한 능력을 상징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여성적인 사물이기 때문에 더욱 감동을 주듯이, 미국에도 이 헤어롤과 비슷한 감동 포인트를 지닌 화가가 있다. 메리 케셋 Mary Cassatt - 평생 독신이었고 드가를 비롯한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했던 미국의 인상파 화가이다. 그녀가 묘사한 여성들을 보면, 남성 화가들이 그리는 여성에 대한 관점과 여성 화가가 그리는 여성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일단 위의 작품, "르 피가로를 읽는 여인"에서 시사와 국정에 관심이 있고 외국 신문을 읽는 지적인 이미지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19세기 말, 화단의 주류는 여성을 여신의 모습으로 미화하여 그리거나 아니면 사교계와 상류층의, 화려한 레이스와 보석으로 장식된 초상화를 그렸다. 그러나 여성화가로서 메리 케셋은 여성의 입장에서 보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렸다. 그녀의 그림에서 여성은 몸매가 드러나도록 꽉 끼이는 드레스보다 일하기 편한 넉넉한 품의 옷을 입고 팔을 걷어부친 채 아이들을 돌보거나 집안 일을 하고있다. 그녀의 그림에서 누드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서의 누드가 아니라,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들의 누드이다. 여자의 나신을 기대하는 남성 고객들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세계는 우리들의 세계가 아니다"라고 일침하는 듯한 위트의 누드. 그녀는 한 번도 결혼한 적 없지만 수많은 '어머니와 아이들'의 그림을 그렸으며, 소소한 주부의 일상이 얼마나 여성적이고 그러므로 아름다운지를 꾸준히 표현했다.

 

The Child's Bath (The Bath), 1893


오페라 극장은 당시 남성들이 손쉽게 여성들을 바라보고 대상화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치 요즘의 클럽처럼. 여성들은 적당한 노출이 있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남성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극장에 갔다. 그러나, 케셋의 오페라 극장은 더 이상 남자들의 관점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아래 그림은 문자 그대로 female gaze를 보여준다. 오페라 관람석에서 여성들을 훔쳐보는 한 남성을 배경으로, 그림의 여성은 시선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다. 그녀가 입은 검정 드레스와 모자는 마치 남자들의 신사복처럼, 심지어 장갑까지, 그녀의 살 색을 거의 다 가리고 있다. 여성들이 들고다니던 아름다운 문양의 부채는 단호히 접혀 있다. 다만 여인은 몰두하여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에서 시선의 주체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Woman in Black at the Opera, 1880


Lydia in a Loge, 1879


아마도 남성들의 시선을 받고있을 이 여인의 뒷 편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바로 지금 그녀가 보고있는 것들이다. 그림 속 거울은 리디아의 망막이기도 한 것이다. 화면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여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여성이 즐겁게 바라보는 대상들이기도 하다. 이 그림에서도 공간을 장악하고 주도하는 것은 male gaze가 아니라 female gaze, 리디아의 시선이다. 


메리 케셋은 여성의 특성을 무시하거나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여성의 관점의 여성들, 지극히 여성적이므로 오히려 당당하고 주체적인, 그래서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을 그린 화가였다. 그녀는 노년까지 여류화가라는 고정관념과 싸웠고 여권운동단체를 지지하며 후배들을 양육했다.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은 끝까지 그렇게 일하는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