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11)애니아와 다비다

2017. 6. 5. 18:10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다비다,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Palatine Chapel, Norman Palace, Sicily, Italy, 1160-1170

베드로 사도께서 룻다와 욥바에서 일하신 사역들을 보면, 그의 스승이자 주님이셨던 예수님의 행적을 많이 닮았습니다. 룻다의 애니아를 보면 예수님께서 일으키셨던 그 중풍병자가 떠오르고 (누가복음 5장, 마태복음 9장, 마가복음 2장) 욥바의 도르가를 보면 예수님께서 일으키셨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떠오릅니다. (마가복음 5장)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그 기적들은 우리 구역 모임에서도 일어나고 있을까요? 실제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픕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습니다. 아무리 시체를 씻고 화장하여도, 숨을 거둔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부패하기 시작하며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납니다. 사별 후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은 지난한 일상에서 점점 짙어지다가 다시 점점 잊혀집니다. 슬픔이나 망각은 그 어느 쪽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문학이나 철학, 종교는 죽음을 고귀한 희생이나 자연의 순환 또는 섭리를 받아들임이라고 미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현실은 그저 썩음, 사라짐, 단절, 부패, 잊혀짐입니다.  그것은 고상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목자론(論)이 신기한 것은 ‘죽음’입니다. 왜 목자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여기셨을까요. 현실의 목자들 중 양을 치다가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계관에서 목자는 죽음을 각오해야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할 수 없이 비장합니다.그만큼 이 세계가 악하고 위험한 곳이며 우리가 나약하고 타락한 존재라는 뜻일 것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해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10:11-15)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10:27-29)

그리고 믿을 수 없이 이상적입니다 - 우리는 영원히 멸망치 않을 것이며, 아무 것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29절) 왜냐하면 한 목자가 목숨을 바쳐 우리를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느 종교도 신이 인간을 지키기 위해 죽는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2000년 전 어느 겨울,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던 솔로몬 행각에서 목소리를 높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내가 생명을 다시 얻으려고 내 생명을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버린다. 나에게는 생명을 버릴 권한도 있고 다시 가질 권한도 있다. 이것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특권이다.” (현대인의성경, 요10:17-18)

정말 이렇게 말씀하시는 목자가 있다면, 제 인생을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 룻다와 욥바에 모여있던 초대 교회 교인들과 지금 양화진 언덕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 구역 식구들은 모두 각자가 그 분의 목소리를 듣고 모였을 것입니다. 실제, 마비되어 딱딱했던 저의 심장은 점점 더 부드러워졌고, 죽은 것 같았던 영혼은 생명의 희망을 얻었습니다. 결국, 일어났던 애니아도 죽었고, 되살아났던 도르가도 죽었고, 베드로 사도도 죽었지만, 저는 약속된 그 날, 그 선배님들을 다시 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친구를 위로할 수 있었으며, 암 4기이신 작은아버지의 침상에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저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때, 해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실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