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12) 레위

2017. 6. 11. 23:27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Damian Hurst 데미안 허스트, The Golden Calf 금송아지, 2008, 3989 x 3505 x 1676 mm, 재료: Glass, gold, gold plated stainless steel, silicone, calf and formaldehyde solution with Carrara marble plinth Formaldehyde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금송아지>는 현대미술의 가격이 책정되는 구조 (혹은 정치)에서 가장 빛나는 사례일 것입니다. 낙찰가가 GBP 9,200,000(한화 약 230억 원 당시 환율)로 정해졌던 날은 2008년 9월 16일, 마침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선고했던 날이었지요. 게다가 데미안 허스트는 화랑을 통하지 않고 직접 경매에 작품을 위탁했으며, 경매 총액은 9천 480만 파운드, 한화 2천억 원이 넘는 액수이니, 화가 한 개인이 아니라 중견 기업의 매출에 비교해야할 것입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이 작품에 대하여 작가는 마이다스의 신화를 언급합니다, “금이란 것은,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영화에서,  서류 가방을 열었을 때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눈부시게 당신을 빨아들이는 그것, 금은 인간으로부터 가장 최선의 것을 끌어내는 동시에 최악의 것도 끌어냅니다. 마이다스 왕은 굶어 죽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주1) 


현대의 우상, 황금에 대하여 작가의 통찰은, (저의 소견에^^) 성경적인 것 같습니다: 인간이 만들었고, 인간이 숭배했으며, 또한 인간이 굶어 죽을지언정 개의치 않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상의 속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이사야 44장 17절) 


광야에서 갈 곳 모르고 동떨어져 남아있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아론에게 그렇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출32:1) 우리도 그렇게 언제나 스스로를 채근하지 않습니까: 가만히 있지 말고, 좀 일어나, 뭔가 좀 해봐라...! 인간은 그렇게나 불안하고 연약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저 역시도 노후가 불안합니다. 돈이 있었다면 부동산을 사두었을 것이고, 심지어, 아마 강직한 남편이 저를 붙들어주지 않았다면, 문자 그대로 금을 집에 사두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론의 금송아지에는 저의 귀걸이도 녹아들어 있음을 인정합니다.) 


원래는, 하나님께서 금송아지의 죄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물으려 하셨습니다. 그들을 인류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모세부터 다시 새로운 나라를 시작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이 스스로 그들의 아들과 형제와 이웃을 도륙했을 때, 무엇보다도 모세가 “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출32:32) 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덮고 가셨습니다. 


제게 참 신비로운 장면은, 모세가 ‘차라리 저를 대신 죽이고 이 사람들을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하던 장면입니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33절) 이렇게 준엄한 대답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받아들이지 않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워버리지도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세는 대신 죽을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두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아주 먼 훗날, 그 생명책에서 자기 아들을 지워버리셨습니다. 정말로 자기 가족, 자신의 아들을 스스로 찔러야 했던 분은 레위지파가 아니라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 


아마도, 레위인들이 자기 동족을 찔러 죽이라는 명을 받았을 때, 본인이 죽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의 지파이니, 그 사태에 대하여 다른 누구보다도 통렬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며, 자기 자신을 찌르는 심정으로 그 명을 준행했을 것입니다. 어떠한 면에서 주님은, 작금의 형편없는 신앙 현실에 대하여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목회자들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생명을 건 기도를 ‘받은 걸로 치며’ 그 값은 오롯이 하나님 본인이 지불하셨듯이, 레위 지파 역시 일부의 희생, 3천명의 죽음까지만 받으시고 살육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모세와 레위인들이 나서주었기 때문에, 즉, 하나님 말씀 안에서 자신들이 죽고자 했기 때문에, 레위의 저주를 제사장의 영예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축복과 저주의 논리를 오해하여, 두려움이나 절망에 매여 있는 크리스챤들이 있을까봐, 찬찬히 가르쳐주신 김광욱 목사님의 말씀에 깊이 감사합니다. 마치 그 레위지파들처럼 오늘도 성도의 죄와 연약함을 자신들의 죄와 연약함과 함께 고민해주시고 기도해주시며 돌봐주시는 목사님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세가 죽기 전 레위지파를 위해 남겨준 축복의 말씀이 참 좋습니다. 우리 목사님들께 이 축복이 그대로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여호와여, 그들에게 거룩한 능력을 주시고 그들이 하는 일을 기쁘게 받으소서. 그들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모든 원수들의 허리를 꺾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현대인의 성경, 신명기 33장 11절)


주1. Damien Hirst cited in ‘Conversation’, Gordon Burn, ‘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 (Sotheby’s, 2008), i. 1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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