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진통제

2016. 8. 16. 12:24글/일상


티비, 팟캐스트, 카카오톡은 스테로이드나 타이레놀 같다. 현실의 지리멸렬함을 달래고 일상의 고통을 뚫어 하루하루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작용과 금단현상이 생기듯 행여 내가 그들의 소음 없이 시간을 독대하는 시도라도 할까봐, 내 영혼은 후유증을 아우성친다. 중독, 게다가 내성. 처음엔 이토록 황홀하고 행복하며 유용한 것이 있었을까 싶었던 매스미디어와 SNS가 이제는 감흥 없이도 내 손 끝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늘의 고통은 위로하지만, 내일의 고통 또한 어김 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와 진통제는 좋은 약이다. 내 몸이 가진 (주님께서 주신) 자가 치유 기능이 결국 병을 이길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견딜 수 있도록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팟캐스트를 통해 들리는 메시지들과 카톡을 울리는 안부 문자들은 진정 영혼의 위로이기도 하다. 고통스런 하루를 대면하고 시간을 흘려 보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엊그제 이상하게도 새벽 1시반부터 5시반까지 잠들지 못했다. 처음엔 아토피성 간지러움 때문에 깨어났을 뿐이지만, 몸의 구석 구석 소양증을 찾아 국소 스테로이드를 바르는 동안 의식은 더욱 또렷해졌다. 마치 꿈을 꾸듯, 너무 많은 욕망들과 걱정들이 솟아올라서 처음엔 잠시 포털뉴스를 보는 것으로 달래려다가 정면대결을 택했다. 어두운 소파에 앉아서 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또 다시 하루를 시작했다. 당연히 컴퓨터를 키고, 핸드폰은 언제나 내 손에 장착한 채, 티비의 소음을 배경으로 바삐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오후에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재시동 했을 때, 갑자기 부팅 에러가 생기고 핸드폰도 완전히 방전되었다. 문득, 모든 ‘영혼의 스테로이드와 타이레놀’로부터 격리되었음을 깨달은 순간, 거짓말처럼 어제 밤 부족했던 세 시간의 잠에 빠졌다. 간간히 깨어 ‘일어나야해. 할 일이 많아..’ 정신이 들었다가다도, 다시 달콤한 잠에 빠져들기를 두어 차례, 결국 완전히 깨어났을 때엔 어둑어둑해진 저녁 무렵이었다. 몇 초 간 멍해있다가, 차차 커튼, 시계 등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곧 이어, 세탁기 (그리고 그 속에서 쉬어가고 있을 세탁물), 냉장고 (그리고 그 안에서 상해가고 있을 야채들) 등도 보였다, 마치 잠들기 전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던 데이터들이 “예기치 못한 종료로 임시 저장한 파일들을 저장하시겠습니까”를 묻는 윈도우들처럼 차례 차례 떠올랐다. 


노트북의 재부팅은 성공했다. 전화기는 100% 충전되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모니터에 바이블워크를 띄웠다. 내 영혼은 근원적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다시 정신을 차리자. 매스미디어와 메신저들을 소비하는데 머물지 않고, 이제는 그들을 통해 전할 “그 메시지’를 생산하고 싶다. 일하고 싶다. 나의 추함과 미련함과 게으름을 뚫어 일하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원한다. 이제 진통제는 그만, 내 주의 얼굴만 보면 나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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