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15) 믿음의 발자취

2017. 7. 4. 09:31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Kendrik, Ruby Rachel (1883-1908)의 묘비,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

http://www.yanghwajin.net/v2/mission/mission_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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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히11:35)

이광희 목사님께서는 “천국에 가면 가장 먼저 누구를 만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으로 성경공부를 여셨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많은 분들의 얼굴들이 떠올랐으나, 목사님께서는 이 질문이 필히 성경공부의 결론과 연결되도록 대화를 이끌어 달라고 구역장들에게 부탁하셨지요. “3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우리 교회 올 해의 표어와 예수님의 말씀은, 반드시 우리 실생활에서 실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믿음의 길을 앞 서 걸어 간 선배를 바라보면서, 오늘의 나 역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기 바라신 것이었지요. 그렇게, 목사님께서는 이번 학기의 마지막 성경공부를 ‘부활’에 대한 말씀으로 맺어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조상들은, 위의 구절 (35절)을 기준으로 양분됩니다: 앞의 구절들은 믿음의 ‘영웅’들, 초자연적인 승리를 맛 본 선배들의 이야기이고, 그 이후의 구절들은 보다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즉, 세상을 거슬렀을 때 크리스챤들이 당하는 고난인데, 그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 구차하게 피하지 않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다니엘 한 사람은 굶주린 사자의 입에서 살아남았지만,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서 사자 밥으로 던져졌던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후자가 현실입니다.

그들이 죽음을 ‘구차히’ 피하지 않은 까닭은 ‘더 좋은 부활’을 목표했기 때문이라는 이 말씀은 얼마나 두렵고 신비로운지요. 아직 저는 믿음을 위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워본 적은 없기 때문에, 우리 교회 양화진 언덕을 거닐 때마다 경이롭습니다. 100년 전, ‘더 좋은 부활’을 꿈 꾼 외국의 젊은이들이 당시 그들에게는 야만이었던 한반도까지 먼 바다를 건너 왔다는 사실도 놀랍고, 아무 위생시설도 병원시설도 없던, 물 설고 식사도 맞지 않는데다가 심지어 방 크기가 너무 작아 몸을 다 펴지 못한 채 잠들 수밖에 없었던 조선 땅에 와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이 눈물겹게 고맙습니다. 그들의 생명을 치르고 저에게까지 온 복음이, 이제 저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 선배님들처럼 "고난"을 택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주어지는 일상의 힘겨움을 겨우 견뎌낼 뿐입니다만, 죽음을 앞 둔 친척 어르신들을 병문안하거나, 몇 달 전 어머니를 여읜 친구를 위로할 때마다, "3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약속을 붙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굳이 순교를 택하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죽기 전 고문당합니다. 고통스럽지 않거나 비참하지 않은 죽음은 없습니다. 저와 같이 작은 자에게도 현실은 ‘3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주님의 약속 없이는 도저히 풀리지 않고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작지만 제 나름의 ‘고난이라는 폭포’를 맞을 때,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사랑과 약속을 바라보는 것 외 다른 것을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예수님 역시 우리 믿음의 선진들처럼 ‘더 나은 부활’을 위해 구차히 죽음을 피하지 않고, 고문과 치욕을 당하며 돌아가셨습니다. 주께서 그 모든 고통을 참기 위해 바라보셨던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은 여러분들이었고, 저였습니다. 우리들을 얻기 위하여, 그 분이 뚫고 가셨던 고난은, 인간의 상상을 넘는, 초역사적이고 전우주적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여러분들께도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께서 고문과 고초 당하실 때, 그 분 눈에는 오직 당신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을 얻기 위해 - 당신을 쟁취하기 위해, 당신의 미소를 얻기 위해, 당신과 함께 있기 위해, 십자가도 참을만한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이 사랑이 여러분들에게 현실을 견딜 힘과 용기 - 즉, 현실을 초월할 '믿음'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