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17) 모세 1

2017. 9. 18. 13:05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Johannes Vermeer, A Girl with Pearl Earnings, 1665

베르메르. 우리 말로 이 화가의 이름을 표기하면, 부드러운 운율감이 생깁니다. 뉴요커들은 그의 이름을 ‘퍼미어’에 가깝게 발음했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특별전시가 열렸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하여 몰려들었던지, 저는 4-5겹 되는 사람들 틈으로 간신히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혹은, '푸른 터번을 두른 소녀')’를 - 엄밀히는, 그녀의 입술꼬리에 맺힌 빛방울을 보았었습니다. 

Johannes Vermeer, A Maid Pouring Milk, 1658

북미와 유럽인들이 베르메르를 몹시 사랑하는 까닭은, 그의 화풍이 지닌 특별한 ‘평온 tranquility’ 때문입니다. 마치 영원으로 통할 것 같은, 순간의 고요. 사진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지만, 놀랍게도 그 매력은 ‘사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베르메르는 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 현재 사진기의 전신 前身 을 이용해 맺힌 상을 그림으로 옮겨 그렸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하이라이트가 그토록 점점이 사진과 닮은 까닭입니다. 

Johannes Vermeer, Lady Writing a Letter with her Maid, 1670-1671

사진은 ‘서사’보다 ‘포착’에 더 가깝습니다. 그 특성이 베르메르의 네덜란드 유화와 만났을 때 일어난 케미는 독특하고 아름다워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 ‘편지를 쓰고 있는 숙녀와 그 하녀’에도 베르메르의 시그니쳐가 담겨있습니다: 마치 무대의 커튼이 열리듯 배치된 그림 속의 구성, 벽의 흠집과 숙녀의 귀고리에 맺힌 빛, 그리고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하녀의 표정과 그 순간 포착. 이들 뒤에 배경으로 걸려있는 그림이 ‘물에서 건져올린 모세’입니다. 베르메르가 생전에 모세의 그림을 그렸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린 다른 그림, ‘천문학자’에도 그 뒷배경에는 이 모세의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

파라오는 갓 태어난 모든 남자 아이를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아이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믿음으로’, 다시 말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아기를 숨겼습니다. 아기가 커져서 더 이상 숨길 수 없게되자, 작은 구원의 방주 (테바)를 만들어, 아이를 넣고 나일강에 흘려보냅니다. 파라오의 말대로 아기를 나일강에 던졌으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 때 일어난 일을, 이재철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십니다:  

  • 마침 우연히도 이집트의 공주가 목욕하러 왔습니다. 
  • 마침 우연히도 하녀들이 시중을 들지 않고 갈대밭 사이를 산책 했습니다.
  • 마침 우연히도 그 하녀들을 바라보던 공주의 눈에 갈대상자가 보였습니다. 
  • 마침 우연히도 상자를 열자마자 아이가 울어서 공주의 모성본능을 자극했습니다. 
  • 마침 우연히도 바로 그 때,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공주에게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자청했습니다. 
  • 마침 우연히도 공주의 모든 경호원들이 목욕하던 공주와 가깝게 접근한 미리암을 놓쳤던 것입니다. 
  • 마침 우연히도 대 이집트 제국의 공주가 하찮은 어린 노예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아기의 친모를 유모 삼습니다.  

‘마침 우연히도’를 ‘하나님의 섭리로’라는 단어로 바꾸어 읽을 수 있습니다. 공주가 모세를 물에서 건져 올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러분을, 그리고 저를 건져 올리신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역사의 시대, 고된 노예의 생활 속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했던 이 평범한 일상은 사실 위대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그 일상적인 육아 - 젖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고 재우는 그 평범함 가운데에서 말귀 모르는 아이 안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심었을 것입니다. 그 말씀 없이는 칠흑같던 현실을 버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암담한 나머지, 행여 내 모든 힘을 다 해 낳은 열매를 현실이라는 파라오가 저 한강에 던져버리라고 하는 것처럼 하루 하루가 힘들고 허무할지라도, ‘믿음으로’ 일상의 방주를 한 땀 한 땀 지어 올리시기를 응원합니다. 내가 바보처럼 갈대숲에 갈대상자를 띄울지라도, 그 보다 더한 보호색일지라도, 우리 주님은 기어코 발견하셔서 건져 올려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아니면, 평생 내 작은 머리의 계산으로 살아야 할 텐데, 이러한 대역전극을 경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께 던질 때, 그 분의 섭리가 성취됩니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 여인이 쓰고있던 편지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 그 천문학자의 발견이 모세의 발견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베르메르는 다른 어떤 화가보다도 평범했고 생전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평생 네덜란드를 떠나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화가가 절대로 배경이 되는 그림을 아무렇게나 정했을리 없을 것입니다. 모세가 발견되었을 때 전 세계의 구원이 발견된 것처럼, 화가는 작은 바늘 구멍을 통하여 세상을 발견하려고 애썼을 지도 모릅니다. 베르메르는 순간을 영원처럼 시각화한 재능있는 화가였습니다. 그 고요함과 명료함처럼, ‘믿음으로’ 주어진 일상을 대하는 모든 분들께 하늘의 견고한 평안을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