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성경공부 |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16) 요셉2

2017. 9. 11. 19:39성경 공부 /미술과함께-2017

Giovanni Andrea de Ferrari, Joseph's Coat Brought to Jacob, oil on canvas, c. 1640, El Paso Museum of Art

죄악은 (은혜도 마찬가지로) 가족들을 타고 흐르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가족들로부터 혐오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당신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혹은 너무나 싫어해서 오히려 그것과 정반대로 가려고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당신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다. 당신에게 행해진 일들이 당신이 행한 일들보다 더 당신이란 사람을 빚어낸다. (Things done TO you is making you more than things done BY you.)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 교만, 이기심, 증오, 반항… 등등은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관계'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심지어 홀로는 자신이 그런 문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볼 수 없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만 자신의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공동체가 절실하다.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당신의 문제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함께 서로 치유해가는 사랑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관계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당신이 그와 관계를 맺으면, 그는 당신의 삶을 뒤흔드실 것이고, 당신 안에 어떤 잘못과 죄악이 있는지 보여주실 것이다. 그는 우리를 긴 여행으로 초대하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자기 자신의 좁고 어그러진 틀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The Hiddenness of God, Timothy J. Keller 목사님의 설교, The Gospel according to Joseph 시리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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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그의 눈 앞에서 엎드렸을 때, 만약 요셉이 공의를 추구했다면 그들을 당장 처형시켰을 것입니다. 만약 형제애를 결심했다면, 달려나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형들, 저 요셉이에요! 이제 함께 살아요!" 두 방법 모두 형들에게 어떤 변화나 회개를 불러일으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요셉은 기근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형들이 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창세기 후반부에서 요셉이 정교하게 연출한 세팅으로 초대됩니다. 그 안에서 형제들은 영문을 모르는 채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이유 없는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그 기묘한 총리에 대하여, 그들은 아버지 앞에서 갑론을박합니다. 생명을 연장 받았으나, 언젠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그 때에는 연로하신 아버지와 담판을 지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식량이 떨어지고 유다가 나서자, 야곱은 내려놓습니다, "내가 아들을 잃으면 잃으리로다." 

여기서 우리는 혹시 형들이 변화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과연 요셉이 용서했을까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처음부터 용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번거로운 연극을 연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그는 인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며,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 분의 섭리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엄청난 상처를 준 형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울부짖었던지, 성경은 그 울음소리가 이집트 사람들과 파라오의 궁궐까지 들렸다고 증언합니다. 형들이 찢었던 그 심장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던 울음, 그 울음이야말로 결국 그 형제들을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야곱이 아들에 대하여 한 번 더 죽고, 요셉 역시 야곱의 편애받는 아들의 인생에 대하여 죽었을 때, 온 형제와 가족이 구원을 얻고, 그 민족을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되었습니다. 아마 형들은 그들의 범죄가 수 천 년을 거쳐 이렇게 쓰임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리가 찢은 그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쏟아졌을 때, 그 분도 요셉처럼 울부짖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를 그저 처형하지도 않으셨고, 우리의 죄를 그저 눈감아 받아들여주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팅해 두신 그 제단 위에서 울부짖으셨습니다. 그 울음은 여러분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거대한 눈물과 통곡이 우리 죄를 휩쓸어버리고, 우리 상한 심령을 치유하여 주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PS 지오바니 안드레아 드 페라리가 그린 위의 그림은 야곱에게 요셉의 겉옷을 가져다주는 장면을 묘사한 바로크풍의 유화입니다. 바로크의 화풍답게 화가는 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하는데 치중하였고, 다른 배경이나 장식은 생략하였습니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스포트라이트로 비쳐지는 것처럼, 혹은 영화에서 얼굴의 클로즈업을 보여주듯이, 그림에서는 거짓말을 하고있는 형제들의 복잡미묘한 표정과 함께 현실을 부정하려는 야곱의 얼굴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야곱은 적어도 29년을 요셉이 죽었다는 절망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강하고 현명한 총리로 키우고 계셨으며, 형제들을 변화시키고 계셨고, 후일 이스라엘 민족을 품을 이집트라는 대국을 건설하고 계셨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실지라도 그는 일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기도하고 있는, 사랑하는 그 사람이 아무리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직 29년이 되지 않았다면 절망하기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마음을 다 한 모든 사랑의 노력과 눈물의 기도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가 잘못되었거나 실행이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그 모든 일을 통하여 결국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