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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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Gracias A La Vida 살아있음에 감사를
살아있음에 감사를 -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신은 나에게 두 개의 별을 주셔서, 눈을 뜰 때마다 검은색과 흰색을 완벽히 구별하게 하셨습니다. 저 높은 하늘 뒤에 가득한 별 빛들을 구분하게 하셨고, 수많은 군중 가운데에서도 내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살아있음에 감사를 -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신은 나에게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습니다. 그 모든 숨 소리와 낮과 밤이 지나가는 소리들, 크리켓 소리, 카나리아, 망치, 터빈 돌아가는 소리, 벽돌이 깨지는 소리, 폭풍우, 그리고 부드러운, 내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살아있음에 감사를 -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신은 나에게 소리와 언어를 주셨으므로, 나는 사고하며 선언합니다. 어머니, 형제, 친구 그리고..
2017.03.03 -
NY NY |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 - 구역모임
Photo by Ben Duchac, https://unsplash.com/collections/30630/nyc?photo=96DW4Pow3qI 어떠한 장소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구역 모임은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업 전문 변호사, 뉴욕필하모닉의 트롬보니스트와 하피스트, 전직 의사이자 작곡가, 동유럽에서 온 건축가, 회계사, 디자이너 등등. 한국에서는 20대 청년들이 모이는 공동체만 경험했던 나에게 청년부터 노년 그것도 다양한 인종과 직업에 걸쳐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 모임은 특별했다. 처음 구역 모임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을 때, 얼마나 망설였던지. 언어적으로도, 문화적로도 (극동아..
2017.02.23 -
NY NY | 거리에서 재즈가 들리면
https://unsplash.com/photos/T-G9PVLOfOY한 여름 밤,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던 길, 우연히 우리 교회 음악 감독이셨던 Jonathan Gilley씨와 키가 한 줌도 안 되는 그의 어린 아들이 한 카페 앞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카페에서는 라이브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콘트라베이스가 마지막 음을 울릴 때까지, 꼬마는 숨 죽여 연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음의 진동이 사라지자, 아이는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도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주더니 다시 길을 걸어갔다. 어린이집에서 곰세마리를 들어야 할 것 같은 어린 꼬마가, 길거리에서 재즈에 반하여 발걸음을 멈추는 장..
2017.02.22 -
엄마의 정원 | 고구마 3
엄마가 주신 고구마는 1년생 화초이다. 이모부와 아빠를 거쳐 내게 오기까지 30년의 세월을 견딘 낡은 스피커 위에서 자신의 노년을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다. 처음 고구마가 싹을 틔웠을 때, 이렇게 많은 햇빛과 그늘을 거느린,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나리라 예상하지 못하고, 다만 햇살을 마음껏 쬐라고 높은 스피커 위에 올려두었을 뿐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채워주어도 금새 바닥을 드러내던, 혈기왕성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틀에 한 번 물을 갈아주어도 괜찮아서 서운하다. 낙엽도 많이 떼어준다. 고구마의 본체도 물렁해지고 있다. 나는 바야흐로 고구마의 노년을 각오해야할 것 같다. 정말 시들은 모습을 블로그에 올릴 수 있을까... 자신은 없어서, 아직은 매일 아름다운 초록의 모습을 찍는다. 사실 나는 매일..
2017.02.01 -
NY NY | 리디머 장로 교회 Redeemer Presbyterian Church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결심했을 때, 나는 학교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고 기도했었다. 제발 좋은 교회가 있는 곳으로 나를 보내달라고 기도 드렸는데, 그것은 매우 어린 소녀 감성의 기도였고 마음 속으로는 작고 아담한 울타리의 교회와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를 닮은 목사님을 그렸던 것 같다. 어쨌든, 맥도널드에서 부끄러워 크게 주문도 못 하던, 소심한 여학생이었던 나에게 타지에서의 교회는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기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충고해 주었다. 공항에 어떤 교회에서 마중 나왔는지에 따라서 이민 생활이 결정 된다고. 어떤 사람들은 영어 실력을 빨리 늘게 하기 위해서 절대 한인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도 충고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 택했던 교회는 이민자 2세들이 세운 교회..
2017.01.18 -
결혼 | 팬텀싱어
오디션 예능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요즘 즐겨보는, ‘팬텀싱어’라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는 유능한 전문 음악인들과 함께 ‘마이클 리’라는 뮤지컬 배우가 나오는데, 그가 라는 3중창을 준비하던 팀에게 준 멘토링이 인상적이었다. 노래를 시작하기에 앞 서, 그는 자기 분량을 부를 때 남아있는 두 사람을 배려하라는 조언을 주었다. 즉 다른 두 사람을 위해 노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첫 구절은 바리톤의 독창이었다. 나는 평소 그 가수의 절제된 부드러움이 참 좋았었는데, 역시 그의 성품대로 점잖게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곧 연주를 중단시키고 조언했다 - 이 사랑을 고통스럽게 시작해야 한다. 미리 당신이 그 감정을 극한대로 끌어당겨 충만하게 시작해 주어야 이후에 부르는 사람들과..
2016.12.31 -
NY, NY | 뉴욕의 첫인상
뉴욕시립대학교에서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뉴욕은 도무지 알 수 없고 두려운 장소였다. 학교에서 보내온 공문에는 시내의 사설 기숙사 명단이 들어있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나의 머리를 누일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모두가 짧고 차갑게, 나를 위하여 남아있는 자리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리스트 마지막 기숙사의 남자는 건조한 동양 악센트에서도 간절함을 느꼈는지, 조금 더 길게 답해주었다, “방이 없어요. (한숨) 더 이상 방이 없어요.” 라는 그의 운율이 마치 도끼의 랩처럼 인상적이어서, 나는 잠시 갈 곳 없는 처지를 잊고 그 기이한 여운에 잠겼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숙소가 없는 뉴욕이라는 도시는 역설적으로 참 고독한 곳 같았다. 처음으로 케네디 공항에 내리던 날, ..
2016.12.29 -
비닐예찬
사과를 반으로 잘라 둘 중 하나는 먹고, 다른 하나는 작은 비닐 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한다.매일 아침 힘 주어, 정갈하게 구분되어 있는 점선을 끊노라면, 비닐의 가벼움과 아무렇지도 않음이 새삼 고맙다. 환경 오염에 대한 걱정이 스쳐도, 분리수거는 죄책감을 얼마나 경감시켜주는지. 이 가벼움. 이 즉흥성. 이 순간성. 이 편의성. 만약 비닐이 심각했더라면, 끈끈하거나 질척였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기에 부담스러웠다면,이토록 사랑스럽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침마다 사과를 반으로 잘라 가벼운 마음으로 비닐을 뜯어 그 안에 넣을 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그 깨끗함에, 그 친절함에, 그 덧없음에 안심한다. 기꺼이 내일도 손 내밀 것이다.
2016.12.28 -
나의 사랑하는 책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울었던 적은 두 번. 그 중 한 번은 박완서 작가님이 돌아가셨던 다음 날, 김영하 작가님이 다른 언급 없이 "그리움을 위하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셨을 때였다. 다른 한 번은 정이현 작가의 "삼풍백화점"을 읽어주셨을 때. 그 사건에 대하여 '신의 심판'이라고 쓴 칼럼을 본 주인공이 신문사에 전화하여 따지는 장면에서 나도 함께 울었었다. 그리고 오늘 세 번 째 나의 눈물을 부른 책은 최은영 작가의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였다. 역시나 아무 생각 없이 팟캐스트를 들으며 이것 저것 잔 일을 하고 있던 나는 결국 눈물로 화장을 포기한 채, 혼자 흐느끼며 옷을 갈아입고 운전대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엘리베이터나 현관 앞에서 만났다면 얼마나 뻘쭘했을까. 만나기로 ..
2016.12.12 -
NY, NY | 글로리아 (Gifted Hands, HFNY)
https://unsplash.com/search/new-york-broadway?photo=pAqfQye5hlw홈리스 쉘터에 머물던 글로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당시에 나는 브로드웨이에 있던 기프티드핸즈 Gifted Hands 라는 미술치료art therapeutic 프로그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동방예의지국 유교 문화의 소산이었던 나는 그렇게 나이 많은 할머니가 센터로 들어서는 것을 볼 때마다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여 그녀를 부축하곤 했고, 그래서 글로리아는 자연스럽게 내가 돌보게 되었다. 지금 나는 부끄러움과 후회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알량한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매 주 기프티드핸즈에 갔지만, 내게 사랑의 마음이나 봉사의 정신은 없었다. 오히려 ..
2016.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