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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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진통제
티비, 팟캐스트, 카카오톡은 스테로이드나 타이레놀 같다. 현실의 지리멸렬함을 달래고 일상의 고통을 뚫어 하루하루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작용과 금단현상이 생기듯 행여 내가 그들의 소음 없이 시간을 독대하는 시도라도 할까봐, 내 영혼은 후유증을 아우성친다. 중독, 게다가 내성. 처음엔 이토록 황홀하고 행복하며 유용한 것이 있었을까 싶었던 매스미디어와 SNS가 이제는 감흥 없이도 내 손 끝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늘의 고통은 위로하지만, 내일의 고통 또한 어김 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와 진통제는 좋은 약이다. 내 몸이 가진 (주님께서 주신) 자가 치유 기능이 결국 병을 이길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고 견딜 수 있도록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팟캐스트를 통해 들리는 메시지..
2016.08.16 -
나의 사랑하는 책 | Lone Stand & Forlorn Hope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치열이 바뀌어 있음을 깨달았다. 두개골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있었다는 것 외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달려가니 입 주변이 피범벅이었다. 치아 때문에 뚫린 입술에서 피가 계속 나고 있었으며, 윗니가 뒤로 밀려 입이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끔찍한 모습이었다는것 외 다른 고통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감사하게도) 신경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넘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남편이 “무슨일이에요?” 라며 방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놀랄까봐 얼굴의 피를 대충 닦았지만, 피는 잘 멈추지 않았고 바닥과 문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그가 놀라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피를 본 남편이 메스꺼워 했으므로, 이제 정말 정신차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소파에 앉아..
2016.08.16 -
나의 사랑하는 책 |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어머니를 향한 초혼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불어 원제로는 "La Chambre Claire" 밝은 방)”은 나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구조주의, 혹은 사진이나 미학에 관한 책이기보다도, 깊은 슬픔에 잠긴 예민하고 고독한 철학자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부르는 초혼이다. 위의 사진은 원문인 불어를 영어로 번역한 Hill and Wang 출판사의 1981년 인쇄본이다. 한국에서는 이 영문 번역본의 제목을 따라 "카메라 루시다"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스투디움과 푼크툼’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지만, 동시에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쉬운 개념이기도 하다. 이 책 안에서 내게 가장 재밌었던 푼크톰의 예는 아래의 사진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승마를 하고 있다는 ‘정보’는,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이 사진을 통해 ..
2016.08.12 -
Macrovie | 아보카도 참깨 월남쌈
더운 여름, 불 쓰지 않는 요리를 하고 싶을 때, 혹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기름에 대한 욕구가 일 때, 몸에 좋은 아마씨유를 참깨와 함께 섭취할 수 있고, 지방에 대한 욕구도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마크로비오틱 방식의 월남쌈! 수업시간에 먹어보고는 맘에 꼭 들어서, 저 아마씨유를 사기 위해 강남 신세계까지 찾아갔었다. 이 귀하고 비싼 기름은 산화가 빠르니 마개를 열면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어떤 분은 아침마다 아마씨유로 오일풀링하여 효과를 보셨다고도 들었다. 나는 아마씨유에서 풍기는 지푸라기 풀냄새를 좋아하며, 아쉽게도 이제는 몇 숟가락 남지 않았다. 재료 아보카도 아마씨유 양상추 양배추 월남쌈피 흰깨 검은깨 소스(간장 와사비 두반장 두유마요네즈) 야채는 냉장고에서 하얀색과 푸른색의 조화를 맞춰 준비했다..
2016.08.12 -
Macrovie | 돌김과 파의 현미리조또
한 달에 한 번, 나의 사치스러운 건강식 유행처럼 마크로비오틱 강습이 번지고 있는 요즘, 이명희 선생님의 수업이 특별한 까닭은, 이것이 "French" Macrobiotic이기 때문이다. 마크로비오틱은 대개 투박하고 단순하기 마련인데, 이명희 선생님은 르꽁드블루 출신 프랑스 요리사의 경험을 응용하셔서 자연적이면서도 "문화"적인 조리법을 가르쳐주신다. 그래서, 이태원에 있는 선생님의 스튜디오에 가는 날은, 내게 한 달에 한 번 허락된 행복한 사치이자 건강이다. 선생님께서 설명해주시는 음식과 몸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전 세계의 다양한 식재료와 향신료 그리고 그에 얽힌 문화를 배우고 직접 해 보는 일은 단순한 요리 수업이나 자연주의 식단을 넘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삶과 문화 상층부의 공기를 흡입..
2016.08.09 -
livluvlun | 피클
친구는 올 때 빈 손으로 오지 않고 언제나 무언가 선물을 가져온다. 하루는 우리 집 앞, 버려진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노란 들꽃을 꺾어왔는데, 그 평범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꽃에서 사이프러스 향과 비슷한, 고상한 향기가 나서 놀라기도 했다. 이 날은 직접 담근 피클을 가져왔다. 통후추랑 월계수잎과 향신료를 아끼지 않았고, 예쁘게 포장하여 자신의 상표가 새겨진 스티커까지 붙인, 그 알록달록한 피클이 너무 예뻐서, 받자마자 따뜻한 햇살이 비추이던 창가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선물을 즐기듯,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일을 즐거워하여 부지런한 친구의 디자인은 그녀의 품성처럼 따뜻하다. 대개의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들꽃의 아름다움을 발굴해내는 그녀의 눈썰미처럼, 그녀의 머리와 가슴 안에는 디자인적인 온..
2016.08.09 -
기계 복제 시대의 디자인
직장을 그만 두고, 이제 어떤 일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나는, 블로그를 통해서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이나 인테리어 혹은 디자인 용품을 파는 사람들의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 의류학과 서양화를 전공했으니, (비록 십 년도 전의 이야기지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전까지 카카오톡 외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물론 싸이월드조차 하지 않았던 내가 소셜미디어라는 망망한 바다에 매일 소심한 눈길을 보내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마침 주변에 프로페셔널 디자이너 친구들이 있어서 약속을 정해 만났다. 그리고 그 날 바로 블로거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지난 10년의 영업팀 업무는 나의 성격도 변화시켰다. 나는 모든 것들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는데 익숙했다. 친구들 앞에서 나는 긍정적인 (가벼운) 핑크빛 (아마츄어..
201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