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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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책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울었던 적은 두 번. 그 중 한 번은 박완서 작가님이 돌아가셨던 다음 날, 김영하 작가님이 다른 언급 없이 "그리움을 위하여"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셨을 때였다. 다른 한 번은 정이현 작가의 "삼풍백화점"을 읽어주셨을 때. 그 사건에 대하여 '신의 심판'이라고 쓴 칼럼을 본 주인공이 신문사에 전화하여 따지는 장면에서 나도 함께 울었었다. 그리고 오늘 세 번 째 나의 눈물을 부른 책은 최은영 작가의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였다. 역시나 아무 생각 없이 팟캐스트를 들으며 이것 저것 잔 일을 하고 있던 나는 결국 눈물로 화장을 포기한 채, 혼자 흐느끼며 옷을 갈아입고 운전대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를 엘리베이터나 현관 앞에서 만났다면 얼마나 뻘쭘했을까. 만나기로 ..
2016.12.12 -
카페 | 커피발전소
명실공히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카페. 심지어, 지도앱에도 나와있지 않은, 간판도 높이 걸지 않고, 당인리 발전소 정문 앞에 있어서 이름도 무심하게 "발전소"라고 붙인, 100주년기념교회 또래 친구들의 아지트, 독일 바로크 클래식 채널을 틀어주고, 가끔 운 좋으면, 유쾌한 페이소스의 최민석 작가님께서 작업에 몰두하고 계신 모습도 볼 수 있는, 주변에 아무리 트렌디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넘쳐나도 아껴두어 매일 매일 가고싶은 카페... 직장 다니면서 일에 지쳤을 무렵 나의 소박한 소원 중 하나는 이곳에 와서 아무 걱정 없이 종일토록 나무 퍼즐을 맞춰두고 아무 책이나 제목 끌리는대로 읽는 것이었다. 쉬크하고 말없으신 사장님은 과거 모 인터넷서점 임원이셨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2016.12.08 -
친구의 부엌을 위하여
연말이 다가오면서 초대가 늘었다. 침체된 경기때문일까, 음식점보다는 집으로 초대하는 이들이 많다. 집으로 초대하는 일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이므로, 나 역시 성의를 표하고 싶어서 직접 그림을 그려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집 앞 슈퍼에서 모과를 하나 천 원에 팔고 있길래, 피사체로 하나만 샀을 뿐인데도 거실에 모과향을 가득 채웠다. 이 기특한 과일은 향기로울 뿐 아니라, 유화로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생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우리 집의 환경에서는 유화를 그릴 수 없으므로, 와트만지 위에 수채화로 그린 후 오일파스텔, 즉 크레파스를 덧칠하고 매트 바니쉬를 발랐다. 오랜만에 수채화가 아니라 덧칠하여 그리는 일이 즐거웠다. 바니쉬가 마르면, 다이소에서 산, 역시 천 원짜리 액자에 끼워 선물할 ..
2016.12.08 -
카페 | Can-Do-Spirit - 로블랜드 트라니아
로블랜드 트라니아라는 이름의 카페가 우리 동네에 아주 작은 둥지를 틀고, 하루 300잔만 준비하여 다 팔리면 문을 닫겠다는 소박한 야심의 안내문을 내 건지 한 달도 안 되어, 우리 동네의 행복지수는 또 한 단계 올라갔다.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린데도 불구, 용돈이 생기면 꼭 이 카페에 가서 한 잔 테이크아웃하고 싶어진다. 까닭은 이 카페의 젊은 사장님과 직원들이 주는 밝은 기운 때문이다. 동네에 많은 카페가 있지만, 이 카페만은 언제나 젊은 엄마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아침 일찍 들러 커피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노라면, 커피향과 직원들의 미소, 재즈 음악, 출근하는 사람들의 러쉬가 가라앉아있기 일수인 나의 기분도 함께 일으켜준다. 왜 이 카페만 잘 되는 것일까. 우리 동네는 항공사 직원들이 많고 젊은 아기..
2016.11.30 -
뉴질랜드 타카푸나 해변
엄마에게 무작정-막무가내로 비행기티켓을 사 주신 큰이모, 그리고 그러한 큰이모와 엄마를 모시고 뉴질랜드에 다녀온 사촌동생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뉴질랜드 타카푸나 해변과 랑기토토 섬을 그렸다. 고마운 분들이 좋아하시던 바닷가를 서울 도심 한 복판의 집에서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라며.
2016.11.30 -
촛불 삼킨 고래 - 제5차 광화문 촛불 집회
제 5차 광화문 촛불 집회에 다녀 온 남편이 보내 준 사진 중에는 파란색 고래 풍선이 있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왜 정부가 그렇게 무력했는지 이제야 비로소 이해되는데, 천진한 미소의 귀엽던 고래 풍선은 등 뒤에 노란 종이배를 싣고 별처럼 반짝이던 촛불의 행렬 위를 두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성경의 요나 선지자도 바다에 빠졌을 때 큰 물고기가 선지자를 삼켜서 3일만에 뭍으로 인도해 주었다고 한다. 문득, 우리 눈 앞에서 아이들이 그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가던 그 때, 단 한 명이라도 기적처럼 살아남기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그 순간에도,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바다 저 편 하늘 저 너머에서는 이렇게 큰 고래가 304명의 영혼들을 고이 저 하늘 나라로 데려가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요나 선지자를 바다에..
2016.11.30 -
NY, NY | 글로리아 (Gifted Hands, HFNY)
https://unsplash.com/search/new-york-broadway?photo=pAqfQye5hlw홈리스 쉘터에 머물던 글로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당시에 나는 브로드웨이에 있던 기프티드핸즈 Gifted Hands 라는 미술치료art therapeutic 프로그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동방예의지국 유교 문화의 소산이었던 나는 그렇게 나이 많은 할머니가 센터로 들어서는 것을 볼 때마다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여 그녀를 부축하곤 했고, 그래서 글로리아는 자연스럽게 내가 돌보게 되었다. 지금 나는 부끄러움과 후회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알량한 ‘봉사자’라는 이름으로 매 주 기프티드핸즈에 갔지만, 내게 사랑의 마음이나 봉사의 정신은 없었다. 오히려 ..
2016.11.24 -
엄마의 정원 | 가을도 떠나고 있다 (엄마는 여행중)
뉴질랜드의 큰이모가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보내주셔서 황급히 떠난 엄마의 해외 여행. 엄마는 집안 곳곳 "난방을 끄라" 와 같은 메모를 붙여두시거나, 간장게장이나 홍시 등의 저장식품을 남겨두셨지만, 아빠의 외로움은 다른 여느 때보다도 짙어 보인다. 우리 집 살림과 아빠 집 살림, 둘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공평하고 속편하게 모두 안 하기로 했다. 하루 한 번 저녁 식사만 챙겨드리는데, 그것도 아빠가 퇴근 때 외식을 하시거나 우리 부부와 함께 저녁을 드실 수도 있기 때문에 가장 간소 버전으로 준비한다. 그래서, 매일 한 번 마실가는 기분으로 아빠 집을 향해 산책하던 길, 익어있는 가을 열매가 너무 예뻐서 찰칵. 어쩌면 이렇게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 아래 이토록 선명하게 붉은 과실을 맺는 걸까. 이 붉은 색이 ..
2016.11.23 -
Walk with Him | 굿모닝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애가 3:23∼26) 성경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하루의 기원 예레미야 선지자는 지금 반짝이는 아침 햇살 속에 드넓은 초원과 아름다운 수목을 보고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폐허가 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죄악과 외세의 공격으로 황무한 땅 앞에서, 노선지자는 '눈물에 눈동자가 떠내려가도록'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아침 인사는 그 때 쓰여졌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016.11.23 -
카페 | 커피향기에 실린 소독약냄새 - 업타운카페 세브란스점
남편이 새벽에 출근하는 날이면 지하철역까지 차로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새벽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오늘은 신촌 세브란스에 아침 8시 30분 예약이 되어 있어서, 새벽 길로 곧장 신촌에 왔다. 오랜만에 출근 행렬에 끼어있으니 흥분되어, 마치 출근하는 사람들처럼 즐겁고 박진감있게 운전하는 바람에 그만 너무 일찍 병원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6시 55분. 출근시간에 김포공항에서 신촌세브란스까지 20분만에 주파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무얼 해야 하나 당황했지만, 역시 우리 나라 최고의 병원답게 아침 일곱시에도 본관은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나는 비교적 한가하고 아늑한 카페를 찾아갔는데, (병원 음식점과 카페가 아무리 아늑한들 소독약 냄새를 품기 마련이지만) 아주 맛없고 차가운 BLT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
2016.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