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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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with Him | 문 (팀 켈러의 시편 묵상 2월 17일)
https://unsplash.com (by Philipp Berndt,Oslo, Norway) 얼마 전 여름, 너무 더워서 바람이 통하라고 열어 둔 현관 문으로 옆 집 아가가 아장아장 걸어 들어왔었다. 무서운 사람이 들어올까봐 언제나 꼭꼭 닫아 둔 문이었는데, 맘대로 들어와버린, 사랑스러운 불청객이 너무 깨끗하여, 나는 감히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못 내고 "아이 예쁘다 아가." 눈마주치며 웃어주기만 했다. 왠지 내가 가까이 다가서면 행여 놀랄까 두려워서. 그런데, 복도 뒤로 그 오빠가 고개만 빼꼼 내밀고 숨어서 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동생이 걱정스럽지만, 낯선 집 현관으로 감히 들어오지는 않던 그 꼬마를 나는 예의 바르게 못 본 척 해주었다. "아가, 어서 엄마에게로 가라. 엄마가 걱정하신다." 이제..
2017.02.17 -
엄마의 정원 | 고구마 3
엄마가 주신 고구마는 1년생 화초이다. 이모부와 아빠를 거쳐 내게 오기까지 30년의 세월을 견딘 낡은 스피커 위에서 자신의 노년을 화려하게 꽃피우고 있다. 처음 고구마가 싹을 틔웠을 때, 이렇게 많은 햇빛과 그늘을 거느린,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라나리라 예상하지 못하고, 다만 햇살을 마음껏 쬐라고 높은 스피커 위에 올려두었을 뿐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채워주어도 금새 바닥을 드러내던, 혈기왕성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틀에 한 번 물을 갈아주어도 괜찮아서 서운하다. 낙엽도 많이 떼어준다. 고구마의 본체도 물렁해지고 있다. 나는 바야흐로 고구마의 노년을 각오해야할 것 같다. 정말 시들은 모습을 블로그에 올릴 수 있을까... 자신은 없어서, 아직은 매일 아름다운 초록의 모습을 찍는다. 사실 나는 매일..
2017.02.01 -
구역성경공부 |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20170122
이곳은 100주년기념교회의 2017년도 구역성경공부를 나눈 후 정리하는 페이지입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성경공부 말씀은 2시간 가량의 구역모임에서 다 소화하기에는 너무 무겁기 때문에, 교회 홈페이지 수요성경공부에서 음성파일을 들으시거나 동영상을 먼저 보고 모임에 참석하실 것을 권유 드려요 (말씀 동영상 링크 클릭) 이곳에는 그 내용보다는 저희들이 소화하고 적용하는 이야기를 위주로 적어두려 합니다. 아무쪼록, 성령님께서 도우셔서 저희가 받았던 은혜가 함께 전달되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님의 첫 번째 질문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삶을 스스로 평가하고, 혹시 진보가 없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을 그냥 보냈다면, 한 해 늙은 것이고, 진보가 있었다면, 한 ..
2017.01.26 -
NY NY | 리디머 장로 교회 Redeemer Presbyterian Church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결심했을 때, 나는 학교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고 기도했었다. 제발 좋은 교회가 있는 곳으로 나를 보내달라고 기도 드렸는데, 그것은 매우 어린 소녀 감성의 기도였고 마음 속으로는 작고 아담한 울타리의 교회와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할아버지를 닮은 목사님을 그렸던 것 같다. 어쨌든, 맥도널드에서 부끄러워 크게 주문도 못 하던, 소심한 여학생이었던 나에게 타지에서의 교회는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기반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충고해 주었다. 공항에 어떤 교회에서 마중 나왔는지에 따라서 이민 생활이 결정 된다고. 어떤 사람들은 영어 실력을 빨리 늘게 하기 위해서 절대 한인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도 충고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 택했던 교회는 이민자 2세들이 세운 교회..
2017.01.18 -
livluvlun | 몬지브로치
몬지 브로치 made by livluvlun 사진보다 훨씬 예뻤다. 포장을 풀었을 때, 와~ 탄성이 나올 만큼. 함께 보내 준 엽서와 봉투 그리고 스티커의 색감도 역시... 믿고 보는 리브러브런. :) 강아지처럼 복슬복슬한 브로치의 질감이 얼마나 예쁜지 표현하고 싶어서, 비슷한 색깔 다른 질감의 목도리랑 모자와 함께 찍어보았다. 이렇게 작은 브로치 하나에도 정성 기울여 담은겨울의 포근함과 겨울의 색깔. 참 예쁘다 리브러브런: http://livluvlun.com/
2017.01.03 -
결혼 | 팬텀싱어
오디션 예능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가 요즘 즐겨보는, ‘팬텀싱어’라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는 유능한 전문 음악인들과 함께 ‘마이클 리’라는 뮤지컬 배우가 나오는데, 그가 라는 3중창을 준비하던 팀에게 준 멘토링이 인상적이었다. 노래를 시작하기에 앞 서, 그는 자기 분량을 부를 때 남아있는 두 사람을 배려하라는 조언을 주었다. 즉 다른 두 사람을 위해 노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첫 구절은 바리톤의 독창이었다. 나는 평소 그 가수의 절제된 부드러움이 참 좋았었는데, 역시 그의 성품대로 점잖게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곧 연주를 중단시키고 조언했다 - 이 사랑을 고통스럽게 시작해야 한다. 미리 당신이 그 감정을 극한대로 끌어당겨 충만하게 시작해 주어야 이후에 부르는 사람들과..
2016.12.31 -
NY, NY | 뉴욕의 첫인상
뉴욕시립대학교에서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뉴욕은 도무지 알 수 없고 두려운 장소였다. 학교에서 보내온 공문에는 시내의 사설 기숙사 명단이 들어있었고,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나의 머리를 누일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모두가 짧고 차갑게, 나를 위하여 남아있는 자리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리스트 마지막 기숙사의 남자는 건조한 동양 악센트에서도 간절함을 느꼈는지, 조금 더 길게 답해주었다, “방이 없어요. (한숨) 더 이상 방이 없어요.” 라는 그의 운율이 마치 도끼의 랩처럼 인상적이어서, 나는 잠시 갈 곳 없는 처지를 잊고 그 기이한 여운에 잠겼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숙소가 없는 뉴욕이라는 도시는 역설적으로 참 고독한 곳 같았다. 처음으로 케네디 공항에 내리던 날, ..
2016.12.29 -
비닐예찬
사과를 반으로 잘라 둘 중 하나는 먹고, 다른 하나는 작은 비닐 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한다.매일 아침 힘 주어, 정갈하게 구분되어 있는 점선을 끊노라면, 비닐의 가벼움과 아무렇지도 않음이 새삼 고맙다. 환경 오염에 대한 걱정이 스쳐도, 분리수거는 죄책감을 얼마나 경감시켜주는지. 이 가벼움. 이 즉흥성. 이 순간성. 이 편의성. 만약 비닐이 심각했더라면, 끈끈하거나 질척였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기에 부담스러웠다면,이토록 사랑스럽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침마다 사과를 반으로 잘라 가벼운 마음으로 비닐을 뜯어 그 안에 넣을 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찬탄한다. 그 깨끗함에, 그 친절함에, 그 덧없음에 안심한다. 기꺼이 내일도 손 내밀 것이다.
2016.12.28 -
livluvlun | 아기이불 Snug Bedding Kid Series
고대하던 livluvlun의 첫 아이템이 나왔고, 나는 조카에게 줄 스너그 베딩 키드 시리즈를 주문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시댁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이불을 깔아주었을 때. 아기는 까르륵 웃으며 이불 위에서 맘껏 뒹굴었다. 친구가 이불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출산한 친구에게 아기 이불을 선물하고 싶은데, 뽀로로가 그려진 것이 아닌, 고급스럽고 디자인도 좋은 상품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동대문에 가서 직접 천을 끊었고 맘에 드는 디자인으로 아기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좋은 디자인을 찾다가 결국 직접 만들게 되었다는 이러한 일화들은 친구에게 자주 있는 일이었다. 동네의 작은 화원 앞에서 못내 그 디스플레이에 대해 조언해주고 싶어서 쉽사리 지나치지 못했다는 경험담을 들을 때마다, 나..
2016.12.27 -
영화 | 라라랜드 La La Land - Damien Chazelle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남편은 무척 바빴고, 주 중이든 휴일이든, 자기 전이나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나 언제든, 노트북과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기념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지만, 나는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무언가 로맨틱하고 우스꽝스런 영화를,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싶어서, 아껴둔 영화 티켓으로 La La Land를 보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진부하고 상투적인 뮤지컬 스코어를 기대했을 뿐이던 우리는 그만, 제대로 어퍼컷을 맞았다. 영화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였고, 로맨스는 지극히 뮤지컬다웠으며, 시종 우리는 웃었고 나는 눈물 흘렸다. 원테이크로 찍힌 오프닝은 이미 유명하다. LA의 싱싱한 오렌지처럼, 가사와 안무 곳곳에이나 같은 고전 뮤지컬을 향한 오마쥬가 마치 달콤한 과즙 터지..
2016.12.20